봄날은 간다 / 기형도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4.12
봄날은 간다 / 김소연 봄날은 간다 / 김소연 땅 위로 주먹을 내밀고, 손가락을 쫙 펴서 흔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짧은 키 들꽃, 손가락 끝에 눈동자 매달고는, 별 거 없는 지상을 휘둥그레 관람한다. 꽃자루 짧을수록 그 뿌리는 필시 굵고 싶다 했으니, 억척스럽고 아귀 힘이 좋은 뿌리 하나, 겨우내 언 땅 밑에..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4.11
봄날은 간다 /조용미 봄날은 간다 /조용미 내가 보낸 삼월을 무엇이라 해야 하나 이월 매화에 춘설이 난분분했다고, 봄비가 또 그 매화 봉오리를 적셨다고 어느 날은 춘풍이 하도 매워 매화 잎을 여럿 떨어뜨렸다고 하여 매화 보러 길 떠났다 바람이 찬 하루는 허공을 쓸어 담듯 손을 뻗어 빈손을 움켜쥐어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3.31
어제의 눈물 / 김상미 어제의 눈물 / 김상미 꽃을 좋아하는 당신 오늘은 어떤 꽃을 드릴까요? 어디에나 피어 있고 아무데서나 지는 꽃 깊은 바다로 스며들지 못하고 말라버린 빗방울처럼 모든 꽃들은 어제를 위해 존재하고 어제를 위해 울죠 어제의 빈칸 옆에 우두커니 서서 누군가의 발소리와 목소리를 기다..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3.23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 김미정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 김미정 돌아오지 않는 나무들이 바닥에 뒹군다 얼굴 없는 흰 발자국만 떠다니는 숨어드는 잎사귀의 아름다운 표정들 사라지고 나타나고 다시 사라지는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나를 모르는 너를 모르고 고요히 나무인 줄 모르는 나무의 이야기처럼 나에게 물..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3.17
민지의 꽃 / 정희성 민지의 꽃 /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간 제자를 찾아 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살 배기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 보다 큰 물뿌리게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3.14
기차 / 강은교 기차 / 강은교 봄이 오면 기차를 탈 것이다 꽃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나무의자에 앉을 것이다 워워워, 바람을 몰 것이다 매화나무 연분홍 꽃이 핀 마을에 닿으면 기차에서 내려 산수유 노란 꽃잎 하늘을 받쳐 들고 있는 마을에 닿으면 또 기차에서 내려 진달래빛 바람이 불면 또또 기차에..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3.13
1959년 / 이성복 1959년 / 이성복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不姓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소년들의 性器에는 까닭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移民을 떠났다 우리는 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3.07
옮긴이의 말 / 이장욱 옮긴이의 말 / 이장욱 나는 옮긴이로서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원본과 다름없음을. 밤의 불 꺼진 방을 옮긴 것이 당신의 마음임을. 지금 응급실의 공기를 옮긴 것이 어제와 그제와 또 지난 시간임을. 옮긴이로서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원본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것이 당신..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2.08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 문성해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 문성해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