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민지의 꽃 / 정희성

다연바람숲 2017. 3. 14. 17:47

 

 

 

민지의 꽃 /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간 제자를 찾아 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살 배기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 보다 큰 물뿌리게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는거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

 

 

정희성 시인이 자주 낭송하는 시다. 이 시를 낭송하는 정희성 시인의 청정한 목소리를 들으면 삭막했던 내 마음에 어느새 작은 꽃들이 피어난다. 꽃과 잡초는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잡초란 인간이 붙인 지극히 이기적인 이름일 뿐이다. 인간의 잣대로 해충과 익충을 구분하는 것처럼. 그러나 인간이 뭐라고 하든 제비꽃은 장미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진달래가 백합을 부러워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앞으로 서로 욕을 하더라도 '잡초 같은 놈'이라고 하지 말고 '꽃 같은 놈'이라고 말하자.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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