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음, 교활한 / 정진규 참음, 교활한 / 정진규 왜 참았을까 참고 참다가 사랑을 참아둔 여자에게 심장이 아픈 여자에게 병문안 전화를 걸고 나니 그렇게 시원했다 자유의 돌기가 온몸에 오소소 솟았다 큰 빚을 갚은 기분이어서 죄를 탕감한 느낌이어서 오늘 하루가 개운하게 저무는 저녁노을을 아주 좋은 색깔..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4.08
봄날, 나의 침묵은 / 조용미 봄날, 나의 침묵은 / 조용미 불행이란 몸을 가짐으로써 시작되는 것 몸이 없다면 어디에 불행이 있을 수 있을까* 봄날 나의 침묵은 꽃 핀 나무들로 인한 것, 하동 근처 꽃 핀 배나무밭 지날 때만 해도 몸이 다시 아플 줄 몰랐다 산천재 앞 매화나무는 꽃 피운 흔적조차 없고 현호색..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3.28
꽃구경 가자시더니 / 최정례 꽃구경 가자시더니 / 최정례 벚꽃나무 머리 풀어 구름에 얹고 귀를 아프게 여네요 하염없이 떠가네요 부신 햇빛 속 벌떼들 아우성 내 귀속이 다 타는 듯하네요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시더니 무슨 말씀이었던지 이제야 아네요 세상의 그런 말씀들은 꽃나무 아래 서면 모두 부신 헛말씀..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3.26
행복했다는 말 / 황학주 행복했다는 말 / 황학주 메밀밭 같은 하얀 파도가 캄캄한 마음 위를 지났다 그 말을 살짝 떨어뜨리듯 두고 가려 한 마음이 뭔데? 나는 그냥, 목이 긴 새처럼 쏙쏙쏙 가슴에 뭔가 박고 있으며 진흙덩어리처럼 흘러내리는 비를 맞고 있으며 눈앞이 캄캄한데 거기 파도와 무늬가 있었다는 것..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3.11
동쪽 창에서 서쪽 창까지 / 최정례 동쪽 창에서 서쪽 창까지 / 최정례 여자는 빨래를 넌다 삶아 빨았지만 그다지 하얗지가 않다 이런 식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은 바로 너야 햇빛이 동쪽 창에서 서쪽 창으로 옮겨가고 있다 여자는 서쪽으로 옮겨 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은 바로 너야 그러나 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2.12
이런 이별 / 김선우 이런 이별 — 일월의 저녁에서 십이월의 저녁 사이 김선우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것처럼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오선지의 비탈을 한 칸씩 짚고 오르듯, 후후 숨을 불며. 햇빛 달빛으로 욕조를 데워 부스러진 데를 씻긴 후 성탄트리와 어린 양이 프린트된 다홍빛 담요에 당신을 싸..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1.26
얼음의 각주 / 신용목 . 얼음의 각주 / 신용목 문득, 먼 하늘에 박혀 있는 방패연이 보일 때가 있다 미끄러져 넘어져서, 언 호수에 박혀 있는 낙엽이 보일 때— 물고기 가면을 생각했다 그걸 쓰고 안부를 묻고 싶었다, 당신은 어디를 지나고 있나요? 아직 어떤 우연도 철거되지 않았다 하필 지금 여기에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1.18
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 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1.07
탁본 / 이영광 * 탁본 / 이영광 평안하다는, 서신 받았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아침이 너무 오래 저 홀로 깊은 동구까지 느리게 걸어갔습니다 앞강은 겨울이 짙어 단식처럼 수척하고 가슴뼈를 단단히 여미고 있습니다 마르고 맑고 먼 빛들이 와서 한데 어룽거립니다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흔들고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4.12.27
타르쵸 깁는 남자 / 김석윤 시집 타르쵸 깁는 남자 / 김석윤 라싸 가는 길목 경전이 적힌 오색 깃발을 테두리 천으로 잇대어 재봉질하는 남자 한때 마방이었던 그의 발밑 기다랗게 늘어놓은 테두리천은 해 떨어지기 전 다다라야 할 차마고도, 지상에서 가장 높은 길 걷던 발이 낡은 재봉틀 발판을 디딜 때마다 굽..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