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紅疫) / 이은규 홍역(紅疫) / 이은규 누군가 두고 간 가을이 홍역처럼 붉다, 라는 문장을 썼다 지운다 무엇이든 늦된 아이 병(病)에는 누구보다 눈이 밝아 눈이 붉어지도록 밝아 왜 병은 저곳이 아닌 이곳에 도착했을까 답이 없는 질문과 질문이 없는 답을 떠올린다 안으로부터 차오르는 열매 나는 병력을..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12.18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 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11.19
슬픔이 해준 것들 / 김경미 슬픔이 해준 것들 / 김경미 목련꽃들 족제비처럼 빠르게 지나가도 천천히 숨 쉬게 해주었다 물뿌리개 같은 회색 기와지붕 낡은 전축 기울여 빗소리 뿌려주었다 소의 어금니가 되게 해주었다 그 말들 가두느라 입안에 지푸라기 가득해도 머리 새빨갛게 물들인 여자 붉은 장미꽃 가득한 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10.23
고양이 감정의 쓸모 / 이병률 고양이 감정의 쓸모 / 이병률 1 조금만 천천히 늙어가자 하였잖아요 그러기 위해 발걸음도 늦추자 하였어요 허나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질 않아 등뼈에도 흰 꽃을 피워야 하고 지고 마는 그 흰 꽃을 지켜보아야 하는 무렵도 와요 다음번엔 태어나도 먼지를 좀 덜 일으키자 해요 모든 것을 넓..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10.15
가을 노트 / 문정희 가을 노트 /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9.09
풍경 한계선 / 박정대 풍경 한계선 / 박정대 풍경들을 지나서 왔지 지나온 풍경들이 기억의 선반 위에 하나둘 얹힐 때 생은 풍경을 기억하지 못해도 풍경은 삶을 고스란히 기억하지 아주 머나먼 곳에 당도했어도 끝끝내 당도할 수 없었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리운 풍경들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네 풍경의 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8.07
숲속의 저녁 / 이병률 숲속의 저녁 / 이병률 우린 서로의 단어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거짓과 하나의 거짓으로도 세상을 가려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 탓에 제1장은 그로부터 우리는 만나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잠시 널어놓은 태양과 달을 거둬가는 시간이면 우리는 안쓰럽게 부스..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7.03
꽃밭에서 쓴 편지 / 김상미 꽃밭에서 쓴 편지 / 김상미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대가 떠난 뒤 나는 꽃들과 친해졌답니다. 그대가 좋아했던 꽃들. 그 꽃들과 사귀며 하루하루 새 꿈을 개발해내고 있답니다. 그대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안개꽃이었나요? 영원한 사랑. 그 꽃으로 그대는 나를 유혹하고 나를 버렸지요. 꽃밭..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6.03
특별한 일 / 이규리 특별한 일 / 이규리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제게로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5.24
다정에 바치네 / 김경미 다정에 바치네 / 김경미 당신이라는 수면 위 얇게 물수제비나 뜨는 지천의 돌조각이란 생각 성근 시침질에 실과 옷감이나 당겨 우는 치맛단이란 생각 물컵 속 반 넘게 무릎이나 꺾인 나무젓가락이란 생각 길게 미끄러져버린 검정 미역 줄기란 생각 그러다 봄 저녁에 듣는 간절한 한마디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