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홍역(紅疫) / 이은규

다연바람숲 2015. 12. 18. 12:34

 

 

 

 

홍역(紅疫) / 이은규

 

   

 누군가  두고 간 가을이

홍역처럼 붉다, 라는 문장을 썼다 지운다

 

무엇이든 늦된 아이

병(病)에는 누구보다 눈이 밝아

눈이 붉어지도록 밝아

왜 병은 저곳이 아닌 이곳에 도착했을까

답이 없는 질문과 질문이 없는 답을 떠올린다

안으로부터 차오르는 열매

 

나는 병력을 지우고

붉은 몸을 잘 표백시키는 사람들을

조금 부러워했나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금 부러워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돌아오는 절기

혼자 부르는 돌림노래에 공을 들이고

그것만은, 포기하지 않기 위해 손을 모을 뿐

 

저기 핑그르르 수면을 도는 단풍잎

같은 병을 다르게 앓지 못한 우리들은

왜 약속 없이 나누는 역병처럼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해서만 생각했을까

 

붉어지는 열매 핑— 도는 울음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그래서 나는 오늘

질문이 없는 답에 쉽게 고개를 끄덕여버린

오랜 부끄러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

잘못된 문장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멀리서 가까이서 도착할 소식들에 귀를 열고

이제 질문이 없는 답을 내내 의심할 것

 

홍역처럼 붉다, 라는 문장을 지웠다 쓴다

누군가 두고 간 가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