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 허연 7월 /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7.23
별사(別辭) / 최금녀 별사(別辭) / 최금녀 커피 잔이 마루바닥에 떨어졌다 깨지면서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책상다리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손가락에서도 피가 흘렀다 사금파리가 된 안개꽃 무늬들이 충혈되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서로 다른 세상의 낯선 기호로 변했다 아끼던 것들은 깨지는 순간에 얼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7.21
혼잣말의 계절 / 김지녀 혼잣말의 계절 / 김지녀 푸르스름한 혀를 내밀고 너무 많은 말을 했어 너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그러나 어떤 말을 해도 벌어지고야 마는 꽃잎들, 하나씩 사라지려고 하는 밤의 질문들, 바깥에서 피고 지는 것들이 나를 향해 돌진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피어나고 있다 빨간 의자가 척추를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7.11
나이 / 김경미 나이 / 김경미 이목구비에 직업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정물화는 원래 제 뜻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화병, 해골, 꺾인 꽃, 썩은 과일들만 주제로 삼는 허무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건강에는 좋지만 과일 같지는 않은 토마토를 먹어야 한다 몸 안에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서로 닮아간다 구두코와..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7.03
씻은 듯이 / 이상국 씻은 듯이 / 이상국 씻은 듯이, 이 얼마나 간절한 말인가 누이가 개울물에 무 밑동을 씻듯 봄날 천방둑에 옥양목을 빨아 널듯 혹은 밤새 열에 들뜨던 아이가 날이 밝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부르튼 입술로 어머니를 부르듯 아, 씻은 듯이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인가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6.12
사막 / 도종환 사막 / 도종환 마른 바람이 모래언덕을 끌고 대륙을 건너는 타클라마칸 그곳만 사막이 아니다 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시대도 사막이다 저마다 마음을 두껍고 둔탁하게 바꾸고 여리고 어린 잎들도 마침내 가시가 되어 견디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곳 그곳이 사막이다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5.30
기억의 집 / 최승자 기억의 집 / 최승자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도처에서 물과 바람이 새는 허공의 방에 누워 "내게 다오, 그 증오의 손길을, 복수의 꽃잎을" 노래하던 그 여자도 오래 전에 재가 되어 부스러져내렸다 그리하여, 이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인가, 나의 꿈인..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5.20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흰 옷을 입고 걸어갔다, 고집스럽게 누군가 고집은 표백된 슬픔이라고 말했다 하자 우리라는 이름으로 도착한 세상, 꿈결도 아닌데 왜 양을 세며 걸어갔나 몽글몽글 구름옷을 입은 양떼들이 참 많이도 오고 갔다 포기 없을 다정이여 오라, 병이여 양 한 마..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5.11
당신이라는 제국 / 이병률 당신이라는 제국 / 이병률 이 계절 몇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4.21
봄날은 간다 / 김용택 봄날은 간다 / 김용택 진달래 염병헌다 시방,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것이 살을 다 내놓고 훤헌 대낮에 낮잠을 자다니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산골짜기 어지러워라 환장허것네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찔레꽃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을 잡아..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7.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