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참음, 교활한 / 정진규

다연바람숲 2015. 4. 8. 15:26

 

 

 

참음, 교활한 / 정진규

 

 

 

   왜 참았을까 참고 참다가 사랑을 참아둔 여자에게 심장이 아픈 여자에게 병문안 전화를 걸고 나니 그렇게 시원했다 자유의 돌기가 온몸에 오소소 솟았다 큰 빚을 갚은 기분이어서 죄를 탕감한 느낌이어서 오늘 하루가 개운하게 저무는 저녁노을을 아주 좋은 색깔로 내가 칠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참았을까 참을 인(忍)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실천이었을까 나는 결코 윤리적이지 못하다 그런 참음이 아니었다 참음이란 유보(留保)다 이런 미결이 이런 미수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을까 직전(直前)의 위기까지 가야만 왜 직성(直星)이 풀릴까 나를 부풀게 할까 단언하자면 내 참음의 질은 범죄의 참음, 교활한 도망침, 나는 그 맛을 즐겨왔다 꽃 피는 것들의 곁에서 둥근 우주로 부풀고 있는 것도 그러하다 죄를 짓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