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 문성해

다연바람숲 2017. 2. 2. 09:38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 문성해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결국에는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밥을 혀 속에 숨기고 웃어 보이는 것인데

그건 죽어도 밥에게 밀리기 싫어서기 때문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우연히 밥을 먹고 만난 우리는

먼산바라기로 자꾸만 헛기침하고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 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왜 단도직입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

오늘은 내가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네게 말한다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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