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 문태준 바닥 / 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9.25
슬픔이 해준 것들 / 김경미 슬픔이 해준 것들 / 김경미 소의 어금니와 여물이 되게 해주었다 쏟아지는 빗방울 하나마다 일일이 작고 둥근 접시에 담아주었다 너무 낮은 자세를 원하던 그 감색의 문 앞 상추잎처럼 얕게 묻어놓은 손잡이 잡자마자 뿌리째 뽑혀 함께 뒹굴 때 안에서 들리던 웃음소리 똑같은 흉기가 되..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9.22
우리가 헤어질 때 / 신용목 우리가 헤어질 때 / 신용목 가을은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별의 방향을 모른 채 걸었다, 나무들의 돌팔매질— 날아가는 붉은 심장들 어떤 인사는 꿈같아라 꾸지 않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하여 누운 적 없는 바닥을 쓸어보는 일 잠든 적 없는 시간을 짚어보는 일 그리고 손바닥을 펼..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9.16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고영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고영민 버림받은 후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야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있기는 한 것인가 빨랫줄에서 한바구니 마른 빨래를 담아 와 개면서 하염없이 저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다보면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분명 저 길을 따라 올 것 같은 밑..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9.12
가을 세탁소 / 김경미 가을 세탁소 / 김경미 부르주아 가을. 문패에 나프탈린 내건다. 지난 여름 해충처럼 괴롭던 관계들 얼씬도 마라 저 다리미 바닥으로부터 오는 자주벨벳의 가을 따뜻함이 스쳐내는 접신의 경지 맑은 어깨며 가슴을 되살려내는 저 대단한 의술 좀 봐 스러진 꽃들 생생히 되돋우는 저런 사랑..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9.08
가시를 위하여 / 김선재 가시를 위하여 / 김선재 통증을 용서해요 부분이면서 어느덧 전체가 된 나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 사이, 날을 세운 날은 아니지만 나이면서 당신이고, 당신이지만 나인 시간을 견뎌요 나는 기원에서 멀어졌다 이미 나는 숲의 변형이며 혹은 바다의 변종이다 형..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9.03
별 / 이병률 별 / 이병률 면아 네 잘못을 용서하기로 했다 어느 날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 내가 아는 사람의 것이 아닌 잘못 보내진 메시지 누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데 한낮에 장작불 타듯 저녁 하늘이 번지더니 왜 내 마음에 별이 돋는가 왈칵 한 가슴이 한 가슴을 끌어안는 용서를 훔쳐보다..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8.23
안부 / 최승자 안부/최승자 나더러 안녕하냐고요? 그러엄, 안녕하죠. 내 하루의 밥상은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 한마디로 진수성찬이 되고요, 내 한 해의 의상은 당신이 보내주는 한 번의 미소로 충분하고요, 전 지금 부엌에서 당근을 씻고 있거든요. 세계의 모든 당근들에 대해 시를 쓸까 말까 생각하는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8.16
눈 속의 사막 / 문인수 눈 속의 사막 / 문인수 눈에, 두어 알 모래가 든 것 같다. 안구건조증이다. 이럴 땐 인공누액을 한 두 방울 ‘점안’하면 한결 낫다. 이건… 마음의 사막이 몰래 알 슬어 공연히 불러들인 눈물이다. 하긴, 사람의 눈물은 모두 사람이 만드는 것. 그 눈물 퍼 올려 너에게로 가야하는 메마른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8.07
8월 / 오세영 8월 / 오세영 8월은 분별을 일깨워 주는 달이다. 사랑에 빠져 철없이 입맞춤하던 꽃들이 화상을 입고 돌아온 한낮, 우리는 안다. 태양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저 눈부신 하늘이 절망이 될 수도 있음을, 누구나 홀로 태양을 안은 자는 상철 입는다. 쓰린 아픔 속에서만 눈뜨는 성숙, 노오랗..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