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 시인의 음악을 듣는 밤 오랜만에 음악다방이란 곳을 갔어요. 차를 주문하면서 테이블에 주어지는 신청곡 용지와 모나미 볼펜 한자루, 문득 세월이 삼십년 전쯤으로 되돌려지는 것만 같았지요. 삼십년 전의 나라면 Led Zeppelin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나 Elvis의 My Boy를 신청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추억을 되돌리는 것조차 막연..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8.22
팔월 / 이병률 팔월 / 이병률 햇살은 그런대로 칠월의 사고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날개 없는 새가 그리 날아갈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동안 칠월은 가난했습니다 더군다나 한 번도 무언가에 쓸려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생은 도처에 나를 너무 낳았습니다 어쩌면 나를 버릴 때도 올 것 같아서였습니다 차..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8.14
해질녘에 아픈 사람 / 신현림 해질녘에 아픈 사람 / 신현림 -세월아,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를 더 아프게 하라 오래된 꿈과 비밀을 간직한 부드러운 사람이고 싶어 부드러움은 망가진 것을 소생시킬 마지막 에너지라 믿어 밥, 사랑, 아이...... 부드러운 언어만으로도 눈부시다 삶이라는 물병이 단단해 보여도 금세 자루같이 늘..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8.07
이별의 질서 / 서안나 이별의 질서 / 서안나 —악양에서 이별을 생각하다 간절한 얼굴을 눕히면 기다리는 입술이 된다 한 사내가 한 여자를 큰물처럼 다녀갔다 악양에선 강물이 이별 쪽으로 수심이 깊다 잠시 네 이름쯤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피가 당기는 인연은 적막하다 내가 당신을 모르는 것은 내가 아직 나를 모르기 때..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8.01
면면 / 이병률 면면 / 이병률 손바닥을 쓸면 소리가 약한 것이 손등으로 쓸면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삶의 이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먹을 것 같지 않은 당신 자리를 비운 사이 슬쩍 열어본 당신의 가방에서 많은 빵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을 삶의 입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지 못했던 간밤 꿈이 다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7.25
비가 와도 젖은 자는 / 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자는 /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7.11
생의 절반 / 이병률 생의 절반 / 이병률 한 사람을 잊는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이 사는데 육십년이 걸린다 치면 이 생에선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나니 당신이 살다 간 옷들과 신발들과 이불 따위를 다 태웠건만 당신의 머리칼이 싹을 틔우더니 한 며칠 꽃망울을 맺다가 죽은 걸 보면 앞으로 한 삼십년..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6.23
장미와 장마 사이 / 박진성 장미와 장마 사이 / 박진성 장미가 시들면서 기온이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졌다 추악하게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장미가 저기압의 구름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28번을 타보면 안다 우이동에서부터 강남 일대까지 장미 軍團이 서울을 점령했다 오월의 겨드랑이나 허벅지 같은 곳 이를테면 홍릉 수목..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6.11
방편 / 천양희 방편 / 천양희 책을 읽다가 무릎을친다 밑줄 치는 대신 무릎을 친다 가령 뼈아픈 문장들 (나에게 몸이 없으면 어찌 나에게 어려움이 있겠느냐) 나에게도 몸이 있었나 생각하는 동안 모르게 고개가 푹, 꺽이네 겨우 고개 들고 저녁을 바라보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때는 우리라는 말은 사용해선 안 된..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5.30
해적 방송 / 박정대 해적 방송 / 박정대 긴 방파제를 따라 파도가 치지 파도에 밀려 저녁이 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방송을 시작해 당신은 듣고 있을까, 오로지 당신을 위해, 긴 긴 말레콘을 따라가며 부서지는 파도치는 말레콘 해적 방송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면 찬찬이라는 음악과 함께 파도치..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