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산책자 / 이병률 사랑은 산책자 / 이병률 마음이 마음을 흠모하는 것 줄 서는 것 떠드는 것 시간이 시간을 핥는 것 서서히 차오르는 것 그러고도 모른 체하는 것 소멸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뼈를, 그것도 목뼈를 살살 분질러뜨리는 것 서서히 떨어지는 속도를 보이는 것 새를 참견하는 것 주책없이 경치에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5.08
박이화를 읽는 고전적인 봄날 고전적인 봄밤 / 박이화 송도 기생 황진이의 사생활은 만고의 고전인데 신인가수 백모양의 사생활은 왜 통속이고 지랄이야 내가 보긴 황진이는 불륜이고 백모양은 연애인데....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가을밤 황국같은 황진이도 좋고 봄밤의 백합같은 백모양도 좋은데.... 좋기만 한데 왜 이 시대엔 벽..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5.05
'나'라는 말 / 심보선 '나'라는 말 / 심보선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처럼 아득하게 더 멀게..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5.04
생일 / 김혜순 생일 / 김혜순 아침에 눈 뜨면 침대에 가시가 가득해요 음악을 들을 땐 스피커에서 가시가 쏟아져요 나 걸어갈 때 발밑에 떨어져 쌓이던 가시들 아무래도 내가 시계가 되었나 봐요 내 몸에서 뾰족한 초침들이 솟아나나 봐요 그 초침들이 안타깝다 안타깝다 나를 찌르나 봐요 밤이 오면 자욱하게 비 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4.21
찬란 / 이병률 찬란 / 이병률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4.13
사월에 걸려 온 전화 / 정일근 사월에 걸려 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4.04
민들레 / 정병근 민들레 / 정병근 영문도 모르는 눈망울들이 에미 애비도 모르는 고아들이 담벼락 밑에 쪼르르 앉아 있다 애가 애를 배기 좋은 봄날 햇빛 한줌씩 먹은 계집아이들이 입덧을 하고 있다 한 순간에 백발이 되어버릴 철없는 엄마들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4.03
삼월 / 이병률 삼월 / 이병률 따뜻하다,고 해야 할 말을 따갑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한계령을 넘었지요 높다,고 하는 말을 넙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한계령에 있었지요 깊이 목을 찔린 사람처럼 언제 한번 허물없이 그의 말에 깊이 찔릴 수 있을까 생각했지요 첫눈이 나무의 아래를 덮고 그 눈 위로 나무의 잎들이 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3.18
매화 / 문 인 수 매화 / 문 인 수 어느 처마 낮은 대폿집에 들고 싶다. 따순, 분통 같은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지분냄새 자욱하여 불콰히 취기가 오른다면 육자배기로, 흘러간 유행가로 질펀 흘러갔으면 좋겠다. 젓가락 장단으로 아, 뚝 뚝 꺾어낸 억수장대비의 북채로 동백 동백 같은, 늙은 작부의 상처 또한 붉게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3.11
필요한 것들 / 심보선 필요한 것들 / 심보선 나에게는 6일이 필요하다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나날이 필요하다 물론 너의 손이 필요하다 너의 손바닥은 신비의 작은 놀이터이니까 미래의 조각난 부분을 채워 넣을 머나먼 거리가 필요하다 네가 하나의 점이 됐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단 한 발짝 떨어진 셈이니까 수수께끼로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1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