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방편 / 천양희

다연바람숲 2011. 5. 30. 20:17

 

 

 

 

방편 / 천양희

 

  

책을 읽다가 무릎을친다

밑줄 치는 대신 무릎을 친다

가령 뼈아픈 문장들

 

(나에게 몸이 없으면 어찌

나에게 어려움이 있겠느냐)

 

나에게도 몸이 있었나

생각하는 동안

모르게 고개가 푹, 꺽이네

겨우 고개 들고 저녁을 바라보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때는

우리라는 말은 사용해선 안 된다)

 나에게도 고통이

몸이었던 때가 있었나

울컥, 울음 맺히네

벌써 밤이네 하면서 창문을 닫네

 

(사랑이란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이다)

 

나에게도 사랑이 있었나

아연하고 실색하네

나는 이미

무릎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네

나를 치고 있는 것이네

 

무릎은 내가 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네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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