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청주 다연 속, 작은 가을

다연바람숲 2015. 10. 8. 17:12

 

 

 

 

 

 

 

 

 

10 월 / 오세영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 낮

 화상입은 잎새들도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화여 네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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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계절을 보내고 또 하나의 계절을 맞는다는 것,

하나의 계절을 맞이하고 그 계절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만큼 하나씩 성숙해가는 일일겁니다.

 

꽃이 피면 꽃이 피어서

꽃이 지면 꽃이 진다고

웃고 울던 봄날도 어느덧 까마득해져서

봄날에 휘감던 스카프를 다시 둘러도 오늘은 가을 향기가 가득합니다.

 

슬프지않으니 되었습니다.

눈물나지않으니 되었습니다.

슬픈 영화보다 내 살아온 날이 더 북받쳐 눈물나던 시절도 지났으니 되었습니다.

 

꽃 피고 지고 잎이 무성하고 열매 맺고 익어가는 동안,

안으로 단단하게 여무는 법을 배웠으니 한뼘 성숙해진 가을입니다.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

잃을 것이 많아도 그리하여 이 가을이 찬란하게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저기 누군가 떠나갑니다.

저기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마악 단풍 속으로 걸어가는 계절의 걸음이 고요합니다.

그런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