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다연바람숲 2015. 11. 4. 16:09

인디언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불렀다지요.

시인 정희성님은 그대와의 추억이 나부끼므로, 11월이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시로써 덧붙였고요.

 

11월이 되고보니 알겠습니다.

무성했던 가지마다 단풍이 들고, 단풍 든 가지 하나하나 서서히 비워가는 나무들을 보니 알겠습니다.

떠나보니 알겠습니다.

사람 가까이, 사람 속에 부대끼며 살 때는 몰랐던 사람과의 거리와 간격,

떠난 사람은 있지만 남겨진 사람은 없는 이별과, 늘 가까이 있지만 정작은 이미 등 돌린 만남들도 있었다는 걸,

내가 셈하지못한 시간으로부터 멀어져보니 알겠습니다.

돌아보니 알겠습니다.

더러 환상통같은 기억으로 고통스러워도 지나간 시간은 그저 지나간 기억으로 저만큼에 있을 뿐이라는 걸,

돌아갈 수 없는 날들과 돌이킬 수 없는 과오와 너무 쉽게 자라기만하는 반성들을 헤아리다 알겠습니다.

오늘의 소멸은 어제의 찬란함의 댓가라는 걸,

빠알간 단풍잎들이 위태롭게 바람을 견디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알겠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지만,

봄의 꽃과 여름의 무성함과 가을의 열매를 기억하는 한,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그 이유를 11월이 되고보니 알겠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과 11월의 첫 날을 이어 밤별 가득한 밤별에서 가을을 묵고 왔습니다.

풍경들 속에서 풍경이 되어 가을처럼 단풍 들고 저물고 고요하고 평안해져서 왔습니다.

그리고 또 알게되는 것이지요.

가을이 내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을로 가는 것이라는 걸,

행복이 내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 가까이 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저 이름을 알 수 없는 저수지를 돌아가면 밤이면 밤별 가득 쏟아지는 깊은 산 속 밤별캠핑장에 도착하지요.

 

이 사진을 의도하고 찍었지만 얼굴이 안나와야하는 것이 작품이라는 저 옆모습의 숙녀는 우리집 귀염둥이, 막둥이지요.

 

 

너무 야위어서 차마 사진 찍을 수 없었던 그 종을 도무지 알 수 없으나 대단히 매우, 서구적인 모습의 멋진 롱다리 개 한 쌍이 있는 우리의 뒷편엔 이렇게 서글픈 단풍이 짙었지요.

 

 

 

이 사진을 찍고 나서 그 갈대숲과 그 들판과 그 주변의 산들이 들썩하였지요. 저기 어디선가 갑자기 날아오른 커다란 새때문에 두 여자가 동시에 질러댄 비명으로 아주 먼 곳의 개까지 한참 짖는 소리가 났었더랬지요. 그 순간이 모녀의 큰 추억이 될 줄은 그땐 몰랐지요.

 

 

 

 

 

 

 

 

 

 

아침 이슬들을 사진에 담으며 그땐 아쉬웠지요. 카메라만 좋아도 저 영롱함을 다 담을 수 있을텐데. .. 본디 실력없는 사람이 기계탓을 하는 법이지요.

 

실제로는 요 풀잎에 맺힌 이슬들이 정말 아름다웠지요. 저 가는 줄기 위로 총총총. . . 보석같은 이슬들

 

 

 

계절의 끝자락에 핀 꽃들은 왜 저리도 아름다운가요. 잡초들이 피워낸 꽃들은 왜 저리도 고귀한가요. 단풍 아래 초록은 왜 저리도 짙게 이슬을 머금는지 그 청청함이 또 아름다웠지요.

 

 

작은 물웅덩이에 살얼음이 얼었어요. 거기 단풍잎도 새빨갛게 살얼음이 얼었어요.

 

 

 

장난 중에 최고는 불장난이라지요.

두 박스의 장작을 다 태우도록 11월의 첫날밤을 장작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요.

맛있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토실한 알밤이 익어가고 그렇게 그 가을밤도 익어갔던가요?

막둥이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몇 번의 소원을 빌었던가요?

 

 

 

 

밤별의 마스코트 고양이여요.

회색빛 귀족적인 자태의 이 냥이는 엄마이고 사진 속엔 없지만 하얀빛의 세 냥이는 이 엄마 냥이의 아들 딸들이래요.

이 냥이와 눈빛 한 번 마주치려고 제가 얼마나 야옹을 외쳤었는지는 비밀요.

 

예감합니다.

11월엔 지나간 시간의 추억들로 더욱 더 따스하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