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 박이화
밤새 보태고 또 보내어 쓰고도
아직 못다한 말들은
폭설처럼 그칠 줄 모릅니다
우리, 그리움에 첩첩이 막혀
더 갈데 없는 곳까지 가볼까요?
슬픔에 푹푹 빠져 헤매다
함께 눈사태로 묻혀 버릴까요?
나 참 바보 같은 여자지요?
눈오는 먼 나라 그 닿을 수 없는 주소로
이 글을 쓰는 난 정말 바보지요?
그래도 오늘 소인까진
어디서나 언제라도 유효하면 안 될까요?
끝없이 지루한 발자욱처럼 눈발,
어지럽게 쏟아지는 한길가
빨갛게 발 시린 우체통이
아직 그 자리를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군요
한편에서 쿨룩이며 숨가쁘게 달려온 제설차가
눈길을 쓸고 거두어 위급히 병원 쪽으로 사라집니다
아, 그렇군요
내 그리움도 이렇게 마냥
응달에 쌓아 두어선 안 되는 거군요
아직 남은 추위 속에
위험한 빙판이 될 수 있겠군요
슬픔에 몸둘 바 몰라
저 어둔 허공 속 지치도록 떠도는 눈발처럼
나, 당신 기억 속에 쌓이지 말았어야 했군요
그러나,
그러나 그 사랑이 전부이고 다인 나에게는
해마다 어디로든 추운 겨울은 오고
큰 눈 도무지 그치지를 않네요
*
12월의 창 밖으로 눈이 내립니다.
오다말다 보이다말다 눈송이를 바라보며 폭설을 기다리는 나는 무슨 연유인가요.
성급하게 크리스마스를 들여놓고 캐롤없는 음악은 오늘 오후도 진부합니다.
그럼에도 가슴 시리고, 눈물겹고, 추억의 앨범을 들추어야할 것 같은 이 감정은 또 무슨 연유인가요.
오늘 아침 신문에는 미국하고도 LA에 12월에 활짝 핀 벚꽃 사진이 실렸더군요.
며칠 전 지인이 보내 온 소식엔 철딱서니없게 12월에 핀 개나리 이야기가 있었더랬지요.
그게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 마음의 온도가, 사람과의 거리의 온도가,
사랑의 온도가 올라가는만큼 기온도 올라가는 거라면 그런대로 매우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걸 믿는 것이 이상 기온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상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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