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 천양희
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한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더러워진 발은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안 될 것은 정신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투덜대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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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온 날들 굳이 묻지않아도 말하지않아도 얼굴만 보면 압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시시때때로 안부묻고 챙기며 살지못하지만, 그도 서로 원망 안합니다.
어쩌다 전화하면 전화목소리로 표정을 읽고 무슨 일 있어? 를 먼저 물어오는 이름들입니다.
서로의 이름만으로도 언제나 애틋하고,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음만으로도 든든하고
세상에 지치고 초라한 모습의 나를 보여도 부끄럽지않은, 아껴먹는 사탕같은 얼굴들입니다.
그 얼굴들, 그 이름들을 나는 친구라고 부릅니다.
그런 친구 다섯,
이젠 모여도 전혀 수다스럽지않은 고요한 중년의 여자 다섯이
아주 모처럼 가을 하늘 아래, 저기 어느 나무그늘에서 추억의 한순간을 남겼습니다.
하루의 길지않은 시간 함께 보내고, 짧은 시간이지만 너무 행복했다는 친구의 문자가 오래 마음을 찡하게 합니다.
나는 너무 큰 보물들이 많습니다.
나는 과분할만큼 귀한 선물들을 많이 받고 삽니다.
사람과 사랑, 행복의 크기로 부자가 되는 거라면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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