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면 보자는 사람 없지만
꽃 아래 만나자는 사람없지만
거기 뜨락에 꽃이 피었다고 남쪽에서 기별이 오고
거기 실개천 버들강아지 물오른다고 봄바람이 전해오고
사소한 마음 담지않은 담담한 안부들도
오고가며 소근소근 남겨주는 이웃들의 따뜻한 인삿말도
내겐 모두 다정인걸요.
꽃몽오리가 맺힌 목련 나무를 누군가 밑둥까지 싹둑 잘라 버린 걸
피려는 작은 꽃몽오리들 아까워 가지를 잘라 다연에 들여놨어요.
가지가지 항아리 물담아 담아놓았는데 꽃이 피어줄지 모르겠어요.
봄인데요 봄밤인데요.
어제 오늘 슬픈 노래를 오래 들어서인지 대책없이 저녁엔 너무 아픈 가슴앓이를 했어요.
슬픔도 중독이 되는지 듣던 노래를 멈추지도 못하고 바닥까지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이럴 날엔 누군가
봄이잖아 이제 꽃이 필 거잖아
오래오래 견딘 슬픔들이 꽃으로 피는 계절이잖아
울음 그치듯 슬픔도 뚝!이야
손 내밀어 잡아주듯이
다정한 위로라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저 가엾은 목련가지의 꽃몽오리들,
꽃이 필까요?
다정에 바치네 / 김경미
당신이라는 수면 위
얇게 물수제비나 뜨는 지천의 돌조각이란 생각
성근 시침질에 실과 옷감이나 당겨 우는 치맛단이란 생각
물컵 속 반 넘게 무릎이나 꺾인 나무젖가락이란 생각
길게 미끄러져버린 검정 미역 줄기란 생각
그러다
봄 저녁에 듣는 간절한 한마디
저 연보랏빛 산벚꽃 산벚꽃들 아래
언제고 언제까지고 또 만나자
온통 세상의 중심이게 하는
김경미의 「다정에 바치네」를 배달하며
그동안에는 당신이 참 무뚝뚝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지요. 당신은 수면처럼 담담하고 침묵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에게 외면당하는 줄로만 알았지요. 심지어 임시로 띄엄띄엄 박음질하는 통에 반반하지 못하고 우글쭈글해진 옷감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불쑥, 당신과 나 오늘처럼 꽃 아래 만나자니요. 꽃은 기약도 없이 곧 질테지요. '또' 만나자니요. 내년에 이 꽃 피거든 그 아래서 또 만나자니요. '언제고 언제까지고' 만나자니요. 내후년에도 만나자니요. 아, 해마다 만나자니요. 당신은 내게 꽃이 되겠다 하시는군요. 당신은 내게 명년(明年)이 되겠다 하시는군요. 그동안에도 나는 당신이 참 다정한 사람일거라고 거듭거듭 혼잣말을 했지요. -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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