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눈물 머금은 神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 이진명

다연바람숲 2006. 1. 3. 15:48

 

 

눈물 머금은 神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 이진명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는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 수발한다.
문 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 신문이 턱 하니 식탁에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리니
나는 식탁에 앉은 채로 꼼짝없이 그걸 씹어야 했다
꾸역꾸역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놓고 대단스럴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 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스리어 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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