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잡히지 않는 나비 3 / 김상미

다연바람숲 2006. 1. 5. 12:30

 

 

 

잡히지 않는 나비 3  / 김상미

 

 

나는 꽃에게도 나무에게도 아무런 할말이 없습니다
깨어 있는 무관심 속으로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조차도
이제는 내 얼굴에 비치는 어두운 결함을 닦아내지 못합니다

 

나는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후퇴를 해야 합니다
철저히 엄밀하게 복제된 싸구려 운명 앞에
즐겁게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구두끈을 매야 합니다

 

웃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놓고 웃으십시오
울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놓고 우십시오

 

나는 이제 누구의 누구도 아니며
누구의 누군가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내게로 그물을 던지고 싶은 사람들은 그물을 던지십시오
내게로 작살을 꽂고 싶은 사람들은 작살을 꽂으십시오

 

나는 천둥 치는 밤에게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게도
이제는 아무런 할말이 없습니다

 

나는 텅빈 광채로 빛나는 내면의 쾌락에
머리를 감고 두 발을 담급니다
덧없는 세월이 먹고사는 더러운 사슬에서
두 손을 빼냅니다

 

그러니 누구든 내 앞에서 발 동동거리지 마십시오
수십, 수백 번 써먹은 거짓 사랑으로 내 귓바퀴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나는 이제 어떤 그물도 작살도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잡히지 않는 나비

 

동서남북 어디에도 나는 없습니다
동서남북 어디에도 나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