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는 동시대의 카라바조의 <유디트>와 비교해 보면 잔인함의 농도, 주제를 소화하는 능력에서 카바라조를 단연 능가한다. 여성 화가이기 때문에 여자의 잔혹함을 그토록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그린 <유디트>에서는 독기와 살기와 피 냄새가 화면 전체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록 강하게 뿜어 나온다.
그녀의 잔혹한 살해 장면을 그리게 된 배경을 남성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증오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한다. 그녀는 실제로 성폭행을 당한 상처와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많은 수모를 받았으며 이 '세기의 강간사건'으로 불리는 치욕적인 강간 소송이 끝난 직후 위의 그림을 그렸다.
화면에 살벌한 기운이 가득하다. 몸통에서 남자의 목을 베어내는 전편과는 달리 위의 그림은 목을 자른 후의 상황을 묘사했지만 여인의 몸에서 풍기는 살기는 여전히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위의 그림에서는 무사히 목적을 완수한 유디트의 희열에 찬 모습을 묘사했다. 유디트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어둠 속을 노려본다. 그 누구라도 가까이 다가오면 가차없이 목을 벨 각오와 투지가 역력하다. 번득이는 눈, 붉게 상기된 뺨과 어깨에 걸친 날카롭고 긴 칼에서 섬뜩한 살기가 흐른다. 피에 절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바구니에 담은 하녀 아브라 역시 잔뜩 긴장된 동작으로 장막 넘어 적의 동태를 살핀다.
적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유디트의 단호한 표정을 성폭력의 희생자인 화가 자신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는 유디트의 머리 장식을 자신의 헤어스타일과 똑같이 묘사한 것이다. 거장 미켈란젤로를 무척이나 흠모했던 그녀는 유디트의 자세를 유명한 조각 작품 <다비드>에서 빌려왔다. 다비드의 손에 쥔 투석기를 유디트의 어깨에 맨 칼로 변형시켜 표현했다.
아르테미시아는 적극적인 후원자가 있었다. 당시 피렌체의 최고의 화가였던 알로리였다. 재능만큼 외모도 출중했다. 훤칠한 키에 여성의 눈길을 확 끄는 수려한 용모와 부드럽고 세련된 매너를 지닌 그는 자신을 흠모하는 궁정 미인들과 심심찮게 염문을 뿌렸다.
이처럼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는 알로리가 낯선 여인 아르테미시아에게 연정을 품은 것이다. 더구나 이탈리아 사람 모두가 입방아를 찧는 아르테미시아의 악명 높은 강간 소송에 얽힌 추문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성 화가의 천재적인 작품을 본 순간 불 같은 사랑을 느끼고 주변의 갖은 험담과 비방에도 그녀를 지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아르테미시아는 알로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타향에서 예술적인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예술가의 사랑은 이별을 전제로 한 비극적인 만남이었다. 알로리는 쓰라린 실연의 상처를 유디트 그림에 담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다. 한 손은 길다란 칼을 들고 다른 손은 남자의 머리털을 움켜쥐었다. 살해된 순간의 참혹함을 말해주듯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 고통을 호소하는 주름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알로리는 유디트의 얼굴에 아르테미시아를, 참수 당한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 희생자의 얼굴에 예술가의 얼굴을 그려 넣는 것은 예술의 오랜 전통이다. 그러나 알로리가 연인 아르테미시아를 가해자인 유디트로, 자신을 비참하게 살해된 피해자로 묘사한 것은 그가 실연으로 고통받는 희생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림을 통해 불행한 사랑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옥 저 팜므파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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