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감성 - 통하는문

키스, 시청 앞 광장 / 로베르 드와노

다연바람숲 2005. 12. 20. 17:20

 

 

로베르 드와노 - 파리를 사랑한 서민들의 사진가

 

 친구들에게 사진작가. '로베르 드와노'를 아느냐고 하면 아는 친구가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사진 <키스, 시청 앞 광장> 같은 사진을 보여주면 갑자기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아마 아는 척을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만큼 그의 사진이 우리에게 친숙한 탓이다. 우리는 그의 사진을 팬시점의 사진엽서에서, 카페의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액자에서, 벽걸이용 소품들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드와노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작품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사진들이 카페 벽면에 걸려 있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굳이 발터 벤야민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이니, 키치(kitch)니 하는 어려운 이야기할 필요없이 우리네 식으로 말하자면 '민화(民畵)'의 현대적 복원이다. 동서양의 구분을 떠나서 민중의 삶이란 것은 다들 고단하고, 피곤한 것이다. 그런 삶의 일부를 드러내고 위안을 주는 그림이나 사진의 필요성도 항상 있어 왔다. 밀레의 만종이 이발소에 걸려있다고 해서 <만종>의 원본이 주는 감동과 작품의 권위가 조금도 줄거나 훼손되지 않는 것처럼 로베르 드와노의 사진이 카페에 걸려 있다고 해서 그의 사진이 상업적인 의도로 찍힌 작품으로 오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재치를 감싸고 있는 시민들의 생활감정은 진실의 밀도가 깊기 때문에 지적인 날카로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하나의 여운으로 가라앉아 있다. 대상에 대한 희극적인 처리는 자칫 잘못하면 대상을 희화화하여 개인의 사생활이나 감정을 다치기 쉬우나 그의 사진은 대상에 대한 친근감과 애정의 눈길로 인해 포근하고 밝으며 긍정적이다. 민화란 것이 말 그대로 민중에 의해 민중의 요구로 그려진 미의식과 정감을 가감없이 드러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사진 역시 그가 원하건 원치 않았건 서민들이 요구하는 미의식과 정감을 가식없이 표현해 나간 진실한 사진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로베르 드와노의 작품 세계

  

로베르 드와노의 작품 세계는 평범한 생활 속의 가벼운 유머와 풍자의 발견이다. 어차피 사진이란 예술이 무(無)로부터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촬영함으로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물론 이 말은 사진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드와노의 사진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일(물론 파리에서의 일이지만)들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특히 그의 사진이 탁월한 점은 그의 사진이 제삼자로 뷰파인더 뒤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와 한 통속이 된다는 점이다.(때로는 개와 한 통속이 되기도 한다.<Fox terrier on the Pont des Arts, 1953>) 그의 작품들은 사람들의 일상 중 한 장면을 드러내면서도 시대적 풍경이라기 보다는 인간 본연의 심리와 사회적 풍속을 섬세하게 나타내고 있다.

 

  드와노의 작품을 보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때의 미소는 터져나오는 것도 아니고 쏟아지는 것도 아닌 가볍게 솟아나는 것이다. 그는 지적인 날카로움이나 냉정한 시선이 아니라 로베르 드와노라는 한 인간의 정신적인 깊이와 그의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포근함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정감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드와노의 작품들은 재치가 빠지기 쉬운 경박함, 시선의 날카로움을 벗어나 등장 인물들의 심리적 반응을 포착한다.

 

  그의 지성적인 재치가 드러나는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시선의 처리인데, 등장인물의 저마다의 심리적 반응을 결정적인 순간의 완전한 시선의 일치를 모색함으로써 사진의 완벽성을 기하고 있다. 이러한 재치를 감싸고 있는 시민들의 생활감정은 진실의 밀도가 깊기 때문에 지적인 날카로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하나의 여운으로 가라앉아 있다. 대상에 대한 희극적인 처리는 자칫 잘못하면 대상을 희화화하여 개인의 사생활이나 감정을 다치기 쉬우나 그의 사진은 대상에 대한 친근감과 애정의 눈길로 인해 포근하고 밝으며 긍정적이다.

 

  로베르 드와노는 그가 태어난 문화적 배경이나 활동시기 그리고 기록성을 앞세우는 사진형식에 있어서 까르띠에-브레송이나 브랏사이 등과 같은 시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사진가이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드와노는 생활속에서 밝은 유머와 풍자를 추구하는 낙관주의자이다. 그의 사진은 축축한 가로, 외로운 가스등, 울퉁불퉁한 보도 위로 진주 빛으로 떨어지는 아침 햇살, 소박한 장식의 유리창 같은 파리의 시정(詩情)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빚어낸 이런 파리의 이미지는 시대를 초월해 보는 이의 가슴에 향수에 젖어들게 만든다. 마치 자신이 파리시 변두리의 모퉁이 노천 카페에 앉아 방금 전 젊은이들의 키스 장면을 훔쳐본 듯한 향수에 젖게 만드는 것이다. 드와노는 이렇게 타인들을 겸허하게 주목하면서 순수사진의 가장 위대한 한 시기를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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