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드 뭉크 〈마돈나〉 1894∼1895 |
19세기 중·후엽 이러한 사악한 여성성의 유행은 비단 특정 지역 미술계만의 국지적 현상이 아니라 영국 심미주의 작가들과 데카당들을 중심으로 정신분석학·문학같은 지식인의 전유물에서뿐 아니라 대중적인 소설과 연극이나 오페라, 아르누보적인 디자인들, 벽지, 가구, 장신구, 광고 포스터, 잉크병, 재떨이, 수프 접시에까지 확산된 유럽적인 현상이었다. 따라서 19세기 말이라는 한 시기에 전 유럽의 문화적 상상력을 지배한 이미지의 하나인 팜므 파탈을 단순히 세기말 데카당한 작가 개인의 여성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산물로 또는 이성에 반대한 근대 남성들의 개인주의적 이상의 산물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여성성욕에 대한 이례적인 이 집착은 19세기 부르주아 중심의 질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 근대성을 둘러싼 여성, 남성 간의 갈등과 불안정의 표지로 읽어야 한다.
사악한 여성의 이미지가 고급문화의 영역에서 그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 낭만주의 문학에서다. 키츠(Jone Keats)의 시 〈잔인한 여성(La Belle Dame Sans Merci)〉은 머리카락으로 남성의 목을 졸라 죽이는 미인을 마술적이면서 신비스러운 고통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팜므 파탈과 상징주의를 이미 예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키츠의 무자비한 미인은 1857년 보들레르의 《악의 꽃》중 〈뱀파이어의 변신(Les Metamorphoses du Vampire)〉에서 근대 남성을 잡아먹는 뱀파이어로 변신한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우상이자 공포·욕망·혐오의 대상인 보들레르의 블랙 비너스는 이후 수많은 팜므 파탈의 전형이 되어 1862년 플로베르의 《살랑보》, 말라르메의 시 〈헤로디아드〉(1867), 위스망의 《거꾸로》(1884),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1891∼1893), 졸라의 《나나》, 레오폴드 폰 자허 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1870) 등에서 위험한 창녀, 짚시, 이국적 여인 등의 수많은 변종을 낳았다. 낭만주의 문학에 나타난 팜므 파탈을 연구한 마리오 프라츠(Mario Praz)가 팜므 파탈적 요소로 지적한 뱀파이어리즘, 스핑크스, 키메라 등 동물과의 합성인간, 관능성, 이국취향 외에도 이들은 불임, 황금에 대한 물신적 숭배 등을 그 속성으로 하고 있다.
팜므 파탈 도상의 확립과 전개
상징주의 문학의 영향과 함께 회화에서 본격적으로 팜므 파탈의 도상이 확립된 것은 1870년대를 전후한 시기이다. 일반적으로 영국 라파엘 전파의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와 프랑스 상징주의의 선구인 구스타브 모로가 1870년대에 팜므 파탈의 시각적 도상을 확립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제티의 말기 작품 〈시리아의 아스타르테(Astarte Syriaca)〉(1877)에서 샘족의 풍작과 생식의 여신, 대모신으로서 인간과 야수들을 애육하는 불멸의 여신 아스타르테는 좁고 폐쇄된 공간 속에 거대한 크기로 우뚝 선 채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이 시리아의 비너스가 지닌 육감적인 입술과 풍성하고 구불구불한 머리타래, 텅 빈 듯한 초월적 시선, 무표정, 화면을 가득 지배하면서 곧추서 있는 자세는 이후 세기 말 뭉크의 〈마돈나〉(1895∼1902), 클림트의 〈유딧 I〉(1901), 크노프의 〈이스타르〉(1888) 등에서 나타나는 팜므 파탈의 전형을 이룬다.
1870년대 영국에서 로제티가 양성적이고 감각적인 성적 대상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면 프랑스에서는 구스타브 모로가 스핑크스 같은 합성인간과 살로메를 통해 그림 속에 남성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팜므 파탈과 남성의 관계를 희생시키는 자와 희생당하는 자의 대결양상으로, 즉 사도 마조히스트적인 관계로 시각화했다. 동시에 그는 인도·이집트·무어 등지의 장식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살로메와 이국취향을 결부시켰다. 성서에서 세례 요한을 참수시키기 위해 헤롯 앞에서 관능적인 춤을 추는 살로메의 이미지 만큼 근대 남성의 마조히스트적인 환상을 잘 드러내는 주제는 없을 것이다. 위스망은 소설 〈거꾸로〉(1884)에서 모로의 살로메를 언어화했으며 이는 다시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로 태어났다.
구스타브 클림트 〈유딧 I〉 1901 |
독일의 오토 그라이네의 석판화 〈사람들 앞에 여자를 내보이는 악마〉(1897)나 잔 델빌의 〈사탄의 보물들〉(1895 ) 같은 장미십자회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팜므 파탈은 여성이 사탄의 도구이고 인간은 남성이라는 서구 전통의 기독교적 관념을 토대로 이브의 사악성을 심화시킨 세기말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이미지를 생산한 주체는 심미주의자와 데카당들, 다시 말해 백인 중산계급 남성이다. 19세기 중·후엽 급격한 도시화·산업화의 진행과 함께 물질주의의 만연, 자유시장경제에서 제국주의로의 진행, 마르크시즘, 다위니즘 등 새로운 정치, 과학적 연구들의 잇따른 등장은 데카당 세대들을 심각한 세계관의 혼돈으로 이끌고 갔다.
그들은 이 과정에 부르주아적 물질주의·자연주의·사실주의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전통적인 믿음과 이성이 지배해온 계몽적 근대사회로부터 탈출하여 꿈과 환상의 세계로 가고자 했다. 댄디, 사탄, 여성, 죽음에 대한 숭배, 삶을 극단으로 몰아가면서 세련되고 신비로우며 성적으로 타락한 세계 속에서 병적인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것은 이들의 중심 테마가 되었다. 사악한 이브의 테마는 바로 이러한 그들의 감각에 가장 잘 맞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데카당 남성들이 합리적·금욕적 세계의 탈출구로 선택한 이 여성성은 여성을 끊임없이 역사 바깥의 존재, 전근대성, 미분화된 존재, 자연으로 타자화해간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결국은 문명의 발전을 문화적으로 진보 혹은 쇠퇴로 해석하는 역사적 사고방식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초기 근대사상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오던 여성과 자연, 여성과 전통의 동일시는 이 시기 다윈의 진화론적 발전모델의 유행과 함께 부단히 투쟁하는 남성성과 유기적이고 미분화된 여성성을 뚜렷이 대립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나아가 팜므 파탈은 인도·아프리카·중동 등의 동방취향과 결부된 경우가 상당수 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여성이면서 동시에 반문명, 즉 타자로서의 동양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신화로서의 동양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대중적 상상력 속에서 되풀이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대규모의 상업박람회와 무역박람회에서 평범한 서구 소비자의 볼거리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 데카당들에 의해 현실이 아닌 다른 곳의 추구로 선택된 동양은 실제 모습과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서구적 질병의 교정책이자 유럽적 자아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제국주의의 시선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데카당 남성들이 계몽적 근대에 대한 반명제로 또는 이성으로부터의 자아 해방의 기호로써 여성으로부터 전통적으로 억압되어오던 성욕을 해방시켰다면, 이 과정에서 거꾸로 여성은 자연, 전근대, 역사 밖의 존재, 동양 등으로 타자화되면서 역사적·지형학적인 근대와 전근대의 이분법 속에 재속박되고 있는 것이다.
신여성, 소비자로서의 여성
세기말 남성들이 강박적이리만치 여성의 사악성과 새도 마조히스트적 남녀관계에 집착하게 된 것은 단순히 보편적인 남성 심리 차원을 넘어 당시 사회에서 기존의 여성관념에 대한 변경 또는 균열을 경험했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 이 시기는 매독의 만연으로 인해 창녀와 죽음 간에는 현실적인 연관성이 있었다.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여성 노동계급들의 윤락화 현상은 많은 문헌 속에서 체제 모순이 아니라 여성의 본질적 사악성의 결과로 해석되었다.
그녀들은 중산계급 가정에서 ‘집안의 천사’로서의 여성에 대립하는 본질적으로 사악한 여성, 성욕에 물든 여성이었으며 남성의 생명을 앗아가는 파괴자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관념을 부채질한 또 하나의 요인은 신여성의 등장이다. 1860년대 이래로 산아제한과 피임을 주장하는 신여성들은 점잖은 신사들에게 출산율의 저하와 국가적 손해를 불러오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빅토리아의 신사들은 여성이 악마의 꾐에 넘어가 아이를 낳지 않고 죽이기 위해 피임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성해방운동은 악마의 유혹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팜므 파탈은 유혹적인 동시에 위험스러운 근대 남성의 성적 대상물로서 독립을 요구하는 신여성과 맞부딪혔을 때 그들이 느낀 공포와 욕망이 결합된 산물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베타 베아트릭스〉 1863 |
아르고스의 아크리시우스가 자신이 손자의 손에 죽게 되리라는 신탁의 예언을 막기 위해 그의 딸 다나에를 지하 굴에 가두자 이를 안 제우스가 황금 비로 변해 다나에를 임신시키고 그 결과로 페르세우스를 낳게 된다는 신화의 내용은 1890년대 화가들에게 성적 엑스터시에 빠진 여성을 그려내기 위한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했다.
클림트의 〈다나에〉(1907∼1908)는 이 테마를 극단적인 장식성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자신의 무릎을 끌어 앉고 있는 다나에의 자기 충족적 성욕과 그녀의 무릎 사이를 흐르는 황금동전들을 통해 여성성욕과 황금에 대한 욕망을 동일시하는 전형적인 예를 제공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거대자본의 독점체제로 진행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은 중산계급 남성들에게 백화점이라는 공적 공간으로 진출해나가는 여성의 소비는 욕망하는 여성이 끊임없이 애인을 소비하듯 남편과 애인을 경제적으로 착취함으로써 남성의 권위를 침식하고 남성이 표상하는 문화를 뒤흔드는 존재이다. 결국 이 그림들은 대량 소비사회에 등장한 여성이 끼칠 도덕적·사회적 영향에 대한 불안을 담고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팜므 파탈은 역사의 시간대를 벗어나 신화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실제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던 신여성, 노동계급 여성, 소비사회에 등장한 중산계급 여성과 남성 간의 갈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은 사회적 생산의 한 부분으로 단순히 사회 또는 개인의 심리를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의 형태로서 주도적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재정의하는 역할을 한다. 미술에 나타난 여성이미지는 ‘여성’이라는 범주를 만들고 사회적으로 규정된 역할을 재정의하는 데 참여했다. 1913년 맨체스터에서 여성참정권운동 시위가 있었을 때 분노한 페미니스트들이 미술관으로 몰려가 벽에 걸린 로제티의 〈시리아의 아스타르테〉에 돌을 던졌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남성을 압도하는 이 사랑의 비너스는 여전히 남성 욕망과 공포를 남근적 여신의 이미지로 대체시킨 성적 환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여성성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끊임없이 보이는 미의 대상물 또는 물신으로 만들어온 남성 재현역사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고정된 여성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197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또다시 논의의 중심에 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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