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신파적 나비의 불온 / 하정임

다연바람숲 2005. 11. 21. 17:21

 

 

신파적 나비의 불온 / 하정임

 

1.빛

 

청바지는 찢어서 입고 머리카락은 일곱 가지 빛깔로 불온한  시절, 개천에 썩은 물이 흐를 때 스타킹에 올을 내면 주루룩 그 연속성이 아름다워 보여줄 듯 말 듯 치마를 살짝 올리며 남자 아이를 유혹할 때도 나는, 당신 새하얀 셔츠의 날카로움이나 눈빛의 깊이나 그 입술의 연약함이나  이마 위 갈 곳을 잃은 검은 머리카락이나 길고 서정적인 손가락을 떠올리려고, 떠올리려고 할수록 당신은 빛으로만 공중에서  잡히지 않고 잡히지 않으려고

 

어느 한 순간 내 앞에 나타나는데 놓칠까봐 손을 뻗으면, 눈동자도 움직일 수 없어 눈을 깜빡이지도 못해 당신은 저기서 환하게, 차갑게 썩어가는데

 

2.나비

 

그 때 나비날개비늘을 묻혀 그대의 볼에 손도장을 찍어둘래 그대가 언젠가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듯 나를 떠올리는 날 그대가 나를 호명하면 그 때, 그대 볼에서 잠깨어나 팔랑팔랑  날아오르는 나비 그대의 눈동자에 아름다운 더듬이를 대고 잊혀진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 줄테지살금 거리리는 여섯 개의 다리를 펴 그대 눈썹을 곱게 빗어줄테지

 

팔랑 팔랑 나비 한 마리, 늙지도 못하는 나비 한 마리, 그대의 볼에서 화석이 된 나비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