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상습적 자살 / 김혜순

다연바람숲 2005. 11. 17. 12:36

 

 

상습적 자살 / 김혜순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 끝에
마침표를 달 듯 무덤을 달고 있다

  

   나는 어제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하는 모션을 취했다
   양쪽 다리를 난간에서 떼었을 때
   비명 소리가 먼저 산으로 가고
   다음, 내 영혼이 뒤따라가는 것을 보았다
   이제 곧 내 몸도 무덤으로 가게 되리라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가만히 눈감고 듣고 있으면
목소리들 속에서
무덤들이 굴러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 목소리 속 무덤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시시때때
공동묘지를 펼쳐놓고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린다

  

   나는 오늘 무덤으로 먼저 떠난
   내 말들로부터 사약을 받았다
   문득, 구만 리 침묵의 무한 공중에서부터
   희디힌 사약 사발이 내게로 두둥실 떠왔다
   내가 두 손에 사약 사발을 받고
   꿀꺽꿀꺽 마셨을 때
   목젖을 타내리던 소리들이 먼저
   산으로 갔다
   다음, 영혼이 항문을 빠져 달아나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제 곧 내 몸도 무덤에 이르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