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이 겨울, 평안합니다. 평안합니까?

다연바람숲 2017. 12. 21. 17:43

 

 

 

 

 

 

 

 

 

 

 

 

 

 

 

 

 

탁본 / 이영광

 

 

평안하다는, 서신 받았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아침이 너무 오래 저 홀로 깊은

동구까지 느리게 걸어갔습니다

앞강은 겨울이 짙어 단식처럼 수척하고

가슴뼈를 단단히 여미고 있습니다

 

 

마르고 맑고 먼 빛들이 와서 한데

어룽거립니다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흔들고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일으켜 세우며

강심으로 세차게 미끄러져 갔습니다

 

 

이대로도 좋은데, 이대로도 좋은

나의 평안을

당신의 평안이 흔들어

한 겹 살얼음이 깔립니다

 

 

아득한 수면 위로

깨뜨릴 수 없는 금이 새로 납니다

물 밑으로 흘러왔다

물 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

흰 푸른 가슴 뼈에

탁본하듯

 

 

*

 

삶은 옥수수 세 개, 인절미 한 봉지, 호박죽 하나, 팥죽 하나. . .

 

어쩌다 어제 점심을 건넜다고 했더니 오늘 친구가 전해준 먹거리가 한아름입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먹거리를 받아놓고 햇살 좋은 한낮에 친구와 산책을 하고 옵니다.

 

모처럼 모자도 벗고, 장갑도 벗고 따사로워진 햇빛 속을 걸어봅니다.

늘 변함없이 그 곳 그 풍경이지만 저녁의 풍경이 다르고, 밤의 풍경이 다르고

함박눈 펑펑 내린 다음날의 햇살 반짝이는 한낮의 풍경이 또 다른 모습입니다.

 

걷다말고 멈추어 풍경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 더디고 느린 걸음을,

말없이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고 늘 곁에서 걸음의 폭을 맞춰주는 친구가 또 고마운 시간입니다.

 

바람도 오늘은 고요합니다.

햇살은 오늘따라 더 따숩고 평안합니다.

어쩌면 삶의 나날 중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거라고 친구와 위안의 말을 나눕니다.

 

서로 채찍이었습니다.

서로 신호등이었고, 서로 등대였습니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우리 서로 성숙하게 어른이 된 한 해였다고 돌아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나이가 어른을 만드는 게 아니라, 경험과 결단이,진정한 어른을 만든다는 걸 배웠습니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인정에 이끌리는 불편함보다 나의 의지를 존중하는 용기,

전화번호부의 불필요한 이름들을 지우듯, 불필요한 감정과 인맥을 지우는 일도 용기였습니다.

 

올 한 해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보다 칭찬해주고 싶은 일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이젠 철없는 어른이 아니라 조금은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싶은 한 해였습니다.

가벼워졌고, 넉넉해졌고, 맑아졌고, 포근해졌고, 그리하여 자신있게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세상에 부끄러울 일이 없다는 것, 당당해진다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동행이라는 말,

산책이 아닌 이 삶을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곁을 지켜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압니다.

친구에게 또 누군가에게 나와 함께하는 이 동행의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길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