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11월은 눈물도 쓸쓸하다.

다연바람숲 2017. 11. 14. 18:17

 

 

 

어른 남자의 눈물을 본 일이 있습니다.

슬픔도 아닌, 아픔도 아닌, 상실도 아닌 그 눈물의 의미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면 애잔합니다.

 

언제였던가요.

이젠 기억도 아득한 아주 오래 전,

시골 전원주택에 홀로 살고 계신 고객님이 다급하게 문자를 보내 온 것도 아마 요즘처럼 가을이 깊어 가는 11월이었을 겁니다.

그날도 샵에 놀러오신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초저녁에 남편에게 와있는 문자를 발견한 건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사고가 있어 많이 다치셨는데 상처에 바를 약이 급히 필요하다는 문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약국이 있는 읍내까지 나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인지라 구급약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약을 구하기 쉽지 않았겠지요.

남편과 서둘러 샵문을 닫고 어떤 상처인지 모르지만 약국에 들러 소독약에서 부터 상처에 필요한 연고까지 골고루 준비해서 시골의 밤길을 달려 그분의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분이 문자를 보내오시고도 벌써 몇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기척없는 고객님 집의 열려있는 현관문을 열고 우리 두 사람이 깜깜한 실내로 들어섰을 때

그 때, 눈에 들어 온 모습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만큼 참담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거실의 불도 켜지 않고 티비만 켜놓은 채 소파에 누워 팔을 이마에 얹고 계신 고객님의 주변으로 사방 피 묻은 휴지들이 흩어져 있고

어둠 속에서 티비의 번쩍이는 불빛에 보이는 그 분의 얼굴은 온통 피와 진물이 흘러내리고 부어 올라서 어둠 속에서도 참혹하고 끔찍했습니다.

술을 잔뜩 드시고 전동 스쿠터를 타고 공판장에 다녀오시다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 방지턱에 걸려 앞으로 몇 미터를 날아서 떨어져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갈리셨다는데 아쉬운대로 습진 피부연고제를 바르셨다는 얼굴은 온통 긁힌 상처에 피와 진물이 엉겨 줄줄 흘러내리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 참 밝고 쾌활한 분이셨습니다.

매사에 당당하고 목소리가 큰 분이었습니다.

그 당당함이 지나쳐 상대를 거슬리게 하는 부분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인정이 많고 친화력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가구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을 들으면 그걸 기억 했다가 다연에 오시는 손님들께 주인장 대신 설명도 해주고

처음 본 손님과도 스스럼 없이 금방 친해져 식사 자리까지 금방 연결해버리는 넉살 좋은 성격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외모도 출중하시고 성격도 좋고 해박하고 경제적인 여유까지 있으시니 주변에 늘 여자들도 끊이지 않던 분이었습니다.

새 옷을 구매하듯이 여자친구를 바꾸시고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기면 남편과 제게 자랑하길 즐기던 분이었습니다.

혼자 소비하는 양의 한계가 있음에도 시골집 텃밭에 고루고루 채소도 가꿔 두루 나누어 주는 걸 행복해하는 분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길 좋아하고 언제나 밝고 유쾌하고 씩씩해서 외로움과는 늘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 꼼짝않고 누워 있는 고객님의 모습은 그저 초라하고 쓸쓸한 나이 든 어른일 뿐이었습니다.

밝고 유쾌하고 재수없을만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사람은 없고 안쓰럽고 나약한 남자가 거기 있을 뿐이었습니다.

급한대로 상처에 발랐다는 피부연고제를 준비해간 소독약으로 닦아내고 진물을 닦아내고 그 위에 다시 상처치료제를 바르고,

다시 상처가 꾸득하기를 기다리며 같은 치료를 반복하고 있을 때, 그 때 그 분의 눈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세상 사람들을 다 아래로 보고 깔보고 무시하듯 큰 소리 치며 살아 온 사람이,

아니 남자가, 아니 환갑의 나이를 지난 어른이 눈을 감고 소리없이 숨 죽여 우는 모습을 그 때 보았습니다.

옆에 앉아 치료를 지켜보던 남편이 그 순간 저를 보고 가만 고개를 흔든 건 모른 척 하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아마도 상처가 아파서는 아니었을 겁니다.

약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만 연락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뜻 달려와주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어쩌면 우리에게까지 연락하신 걸거라 생각했습니다.

돈을 쓴다면 서로 달려오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이 아프고 힘들 때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몹시 씁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홀로 상처에서 흘러 내리는 피와 진물을 닦아내며 어둡고 아픈 시간을 견디는 동안 어쩌면 사무치게 쓸쓸하고 외로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어른 남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고아처럼 버려지는 쓸쓸한 순간엔 남자도 외로워서 울 수 있다는 것을.

 

그 후로 치료를 잘 하셔서 얼굴에 흉터 하나 없이 회복이 되신 건 참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날에 대하여 그 분도 우리도 누구도 다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던 건 서로의 암묵적인 약속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술 한 잔 하시면 어린 날부터 살아온 시간들 이야기 해주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쩌면 그 분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곧 그 분은 그 분 본래의 쾌활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 분을 바라보는 우리는 늘 짜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 시골에서 청주까지 출근하듯 먼 길을 달려 나오시는 것도, 사람이 그리워서라는 것을,

지나치다 싶을만큼 이 여자 저 여자 가볍게 만나는 것도 결국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라는 것을,

그렇게 유쾌하게 떠들고 밝게 웃어도 그늘이 깊어 세상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않는 쓸쓸한 분이라는 것을,

마음은 한없이 여리고 약하고 외로우신 분이어서 그걸 들키지 않으려 더 큰소리 치고 강하게 보이려 한다는 것을,

알아서, 알 것 같아서 더러 생각없이 함부로 말씀하시는 성격때문에 등을 돌리고싶던 많은 고비도 잘 참아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불끈하고 반박하는 제게 "그냥 형님의 말투가 그렇잖아. 당신이 이해해" 라고 언제나 저를 다독인 건 오히려 남편이었습니다.

 

어느 때엔 일주일 내내 하루 두끼를 우리 부부와 함께 할 만큼 가족처럼 오래 지내 온 분이었지만,

샵이 축소되고 남편이 외부일을 시작하면서 여자 혼자 있는 샵에 남자가 들락거리면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다고 그분 스스로 발길을 멀리한 것이 이제는 간간히 안부나 소식은 듣지만 어쩌다보니 서로 연락조차 안하고 지낸 지가 꽤 오랜 시간이 됩니다.

 

여전히 씩씩하시고, 여전히 당당하시고, 어디서든 또 사람 사이에서 잘 지내고 계실 것이라 믿지만

어떤 시간이든, 어디에서든,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분이 외롭지않은 날들을 보내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흩날리고, 풍경이 쓸쓸해지는 11월이 되면

문득 낯설고 가슴이 짜안했던 오래 전 11월의 눈물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