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자존심은 버려야 하는 게 아니라 지켜야 하는 거야

다연바람숲 2017. 10. 16. 18:42

 

 

 

 

 

 

'자존심은 가장 파괴적인 힘이야. 자존심이 우리 눈을 가리지. 자존심 때문에 눈이 멀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기적인 생각밖에 못하게돼. 그럼 우린 주위를 올바로 볼 수 없게 되지. 자존심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 거야. 진실의 소리가 들려와도 귀를 완전히 닫아버리지. 내 생애 단 한 번뿐이었던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도 끝내 잃어버리게 된 건 그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이었어.'

 

 

                                                            더글라스 케네디 < 모멘트> 중에서

 

 

*

 

자존심에도 편견이 있다.

지극히 이기적인 감정이다.

 

똑같은 말, 똑같은 대우를 받아도

그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상처를 받거나 상처받지 않기도 한다.

 

전혀 나의 자존심따위를 건드려서는 안되는 인물이라 얕잡아 본 누군가가,

혹은 자존심따위 건드리지 않아도 이미 상대에 대해 주눅이 들어있는 누군가가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상처를 주었을 때 빌어먹을 자존심은 이성을 잃거나 극에 달한다.

 

자존심은 상황이나 환경에도 크게 지배를 받는다.

 

똑같은 말, 똑같은 대우를 받아도

당시의 상황이나 주변의 환경에 따라 상처를 받거나 상처받지 않기도 한다.

 

분위기에 따라 자존심을 건드리는 어떤 말이 사소한 농담이 되기도 하고

또는 어떤 여건에서 듣는 말인가에 따라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상처가 되기도 한다.

나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최선의 감정, 자존심을 지키는 이유도 그리하여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들으면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깍아내린다고 생각하고 모든 연락과 인간 관계를 차단하는 즉흥적인 결단을 내린다.

그 어이없는 결단으로 자존심 상하는 온갖 비난을 듣게되는데 그럼에도 결국은 또 먼저 손을 내민다.

자존심을 지키자고 선을 그었다가 결국 자존심을 굽히고 자신이 다가가는 것인데 오히려 결과는 비굴이다.

 

어떤 사람은 상대가 아무리 모욕적이고 무시하는 말을 하고 비난을 해도 무조건 참는다.

사랑에 있어 자존심따위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사랑과 자존심을 잃지않는 것의 문제는 별개의 일이다.

어떤 대우나 어떤 멸시를 당해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일만이 상대를 곁에 두는 일이라고 자존감을 버린 사람은

결국 그 자존심 하나 지키지 못한 이유로 배알도 없는 사람이 되어 더 심한 멸시를 받거나 결국은 비참하게 버림받는다.

 

그렇게 같은 상황을 반복하며 숱하게 버림받아도 상대가 다시 찾아오면 또 자존심은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받아주는 여자,

자신의 자존심은 비굴해도 지켜야하는 것이고, 상대의 자존심은 짖밟고 짖눌러야 찍소리 못하고 복종하는 거라 믿는 남자,

몇 해가 지나도록 변함없이 여전히, 똑같은 악순환을 반복하며 지내는 주변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은 그래서 매우 안타깝다.

굳이 남의 연애사에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자신이 포기하고 홀대한 자존심때문에 함부로 취급당하고 멸시 당하는 사람에게

자존심은 버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지키고 아낄 수 있을 때 타인에게도 귀하게 존중받는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자존심 때문에 눈 멀어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기적인 감정에 빠질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원만한 사랑이나 인간 관계를 위해서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존심은 다스리고 지켜야 하는 감정이지 버려야 하는 쓰레기 같은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과 상대의 자존심도 지켜주지 못하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무의미한 것이지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다.

자존심 때문에 잃어버리거나 놓친 사랑이 있다면 그 또한 판단이나 용기의 문제이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나친 자존심은 경계하지만, 자존심은 당당한 내 권리이다.

세상을 향한 자신감의 표현이며 내 인격을 지키고 표현하는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딜레마에 빠져 눈이 멀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내 자존심은 내가 현명하고 똑똑하게 지켜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