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그러니까 살아보는거야

다연바람숲 2017. 11. 28. 16:35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알맞은'사람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성은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고 부름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  알랭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에서

 

 

*

 

 

"이혼하고 싶어요"

어린 세 아이의 엄마인 젊은 여자가 이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왜? 냐고 묻지 않는다.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한다는 건 이혼까지 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정말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시시콜콜 상의라는 걸 하지않는다.

결심이 결단이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시시비비나 소문은 그 이후의 일이 된다.

 

"이혼하면 아이들은?"

"제가 키워야지요. 남편에겐 못 맡겨요."

"딸아이가 몇 명이지?"

"셋요. 세 아이 다 딸이예요"

"아직 젊은데 아이들만 바라보고 평생 혼자 살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왜? 이혼까지 하고싶은지 그 이야기를 묻는건 나중의 일이다.

아니 묻지 않아도 말한다. 우선은 이혼이란 선택 후의 현실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엔 세상이 참 무서워. 뉴스 듣는게 무서울만큼 끔찍한 일들이 참 많아.

그거 알아? 요즘엔 딸 데리고 재혼하는 건 미친짓이래.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보니 의붓아버지도 의붓할아버지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잖아."

그리고 최근에 뉴스에 오르내린 입에 담기도 끔찍한 몇 몇 사건 사고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친구집에 딸아이 놀러보낼 때도 이제는 신경이 쓰여 조심스럽다는 여자의 이야기도 덤으로 따라온다.

 

"그래. 이런 험한 세상에서 자기 딸들에게 가장 안전한 남자가 누굴까? 자기 딸들 지켜줄 유일한 남자는 그래도 아이들 아빠밖에 없어.

엄마가 최선을 다해서 지켜준다 해도 혼자서는 아무래도 힘이 들거야. 아빠는 존재만으로도 아이들 지켜주는 큰 울타리가 되는 법이니까"

물론 그 울타리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에 대하여 세상의 관점이 아무리 달라졌다고는해도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걸 보면, 여자에게도 그 울타리는 세상의 불필요한 시선들과 관심으로 부터 지켜주는 강력한 힘이 되어주는 법이다.

 

여자가 남편의 이야기를 한다.

여자가 이혼 얘기를 하는 것도 어쩌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리거나 어리석거나 철이 없거나 아내가 그 남편을 바라볼 때 한없이 답답하겠구나 생각을 한다.

그랬구나. . 이런, 그러면 정말 속상하지. . . 화나는게 당연한거야. . . 잘했어. 나도 그렇게는 못했을거야. . .

들어준다. 들어주면서 그녀가 말의 호흡을 가다듬을 때마다 진심으로 공감하는 말들을 건네준다.

나이는 어리지만 여자의 남편보다 여자가 훨씬 생각이 깊고 어른스럽다. 똑부러지고 현명하기까지 하다.

 

결혼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억지로 등떠밀어 선택한 길은 아닐 것이다.

죽자고 사랑해서 결혼을 해도 사랑의 유통 기한은 길어야 3년이라고 한다.

살다보면 사랑이 정이 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사랑은 또 의무가 되고 책임이 된다.

지금 헤어지고싶은 남자도 한때는 헤어지고싶지않아서 결혼을 선택했던 사람일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의 기호에 알맞는 그런 조건만을 가진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성인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맞춰가는 것이 연애고 곧 결혼일 것이다.

차이는 내게 맞지않을 때 내가 주장하는 불편이므로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나도 결국은 상대에게 성격 차이, 입맛 차이, 혹은 사고의 차이 등으로 불편한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쯤에선 알랭드 보통의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말에 공감을 해야 한다.

 

미워하고 원망하지만 여자의 말에는 여전히 남편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다만 남편의 자발적 무능에 대한 질책은 함께 살아야 할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권리를 찾지못하고 아이처럼 의존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조금 혹독해져도 괜찮다.

여자의 이혼하고 싶어요,는 어땋게든 남편을 일으켜 가장으로서 존중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의 간절한 반어법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여자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세 아이들을 사랑한다. 세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라면 그 무엇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도 세 아이들을 사랑한다. 딸바보라는 별명을 달고 살만큼 세 아이들을 끔찍히 사랑하는 자상한 아빠라고 한다.

 

실제로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이혼 남녀 814명을 대상으로 ‘이혼이 후회스러울 때는 언제인가?’ 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설문결과 남성은 ‘자녀들이 맘 고생할 때(45.4%)’를 1순위로 꼽았고, 2위는 ‘외로움에 사무칠 때(29.7%)’, 3위는 ‘주변의 안 좋은 시선이 있을 때(13.9%)’ 였다. 여성의 경우 역시 ‘자녀들이 맘 고생할 때(37.1%)’를 1순위로, 2위는 ‘주변의 안 좋은 시선이 있을 때(20.7%)’와 3위는 ‘삶에 두려움이 느껴질 때(16.4%)’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혼한 남녀 모두 어른들의 이혼으로 인한 아이들의 상처때문에 이혼이란 선택을 가장 후회하게 된다는 셈이다.

 

그러니 그런 후회는 조금 늦게해도 괜찮다.

 

여자에게 남편으로서 용서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아이들의 아빠로 받아들이며 살라고 말한다.

나만 빼고 세상 사람들 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도 들여다 보면 그 나름대로 걱정거리를 갖고 사는 법이고,

살다보면 지금 이런 걱정은 언제 지나갔나 모르게 지나가고 또 뜻하지않은 새로운 고비가 오고 또 지나가고,

그 고비고비 잘 넘기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때 내가 잘 참았구나, 내가 현명했구나 스스로 대견해지는 날이 온다고,

때로는, 나 한 사람 참으면 세상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으면서 평안해지고, 그 속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진다고,

하지만 무조건 참지는 말고, 바로 잡아야할 것은 바로 잡되 아이들에게 상처가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것.

 

여자가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냥 참고 살아야겠지요?"

"아이들을 위해 참는 건 자신과의 약속이고, 대신 남편에겐 바뀌지않으면 이혼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나 엄포도 필요하겠지?"

" 아~ 맞다." 이런 대화가 오갈 즈음엔 웃음도 자연스러워진다.

 

" 그 집 막둥이가 스무살이 될 즈음이면 자기 나이가 내 나이쯤이 되는데, 그 때 어떤 선택을 하거나 결정을 해도 늦지는 않을거야."

 

세상에 별 남자 없고, 별 여자 없다더라. 식의 진부한 말같은 건 때론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의 가치, 그 사람이 절실하게 지키고 싶어하는 것의 가치가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살아진다.

살아간다.

그래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