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누군가 내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다연바람숲 2017. 9. 26. 17:50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마지막으로, 희망을 품을 것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

    

            - 임마뉴엘 칸트

 

 

누군가 내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무엇이 그리 좋아 1년 365일 웃고 사냐고 그렇게도 행복하냐 물었다.

커피숍 의자에 막 앉으려다 느닷없이 받은 질문이었지만 주저없이 네. 라고 답했다.

 

딱히 불행할 일이 없으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딱히 힘들고 좌절할 일이 없으니 행복하다 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침 일찍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차린 밥상은 이 서툰 솜씨로도 완벽하였고

밥그릇의 바닥까지 긁어가며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의 감사는 분에 넘쳤으며

출근 길의 햇빛은 찬란했고 바람은 서늘하였으며 의상은 온도에 알맞았다.

오늘의 신호등은 쉬이 길을 열어주었고 늘 속을 썩이던 주차공간까지 완벽했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늘 습관처럼 하는 혼잣말을 오늘의 풍경들은 더 눈부시게 받아주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 없으니 웃는다. 웃으니까 행복하다. 행복해서 또 웃는다.

 

내게 질문을 했던 분이 남편과의 불화로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건 이후에 알았다.

힘들어하는 사람 앞에서 굳이 행복한 티를 냈어야 했나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살면서 나 역시 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무수히 힘들고 어려운 시련과 고통을 지나왔다.

하지만 지금의 내 얼굴에서 불행의 그늘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건

살아오면서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진리를 믿고 터득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잠시 좌절하고 잠시 근심하고 잠시 상처받으면서 스스로 또 치유하며 살았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일들이 내게는 사소한 불행이 되거나

누군가에겐 매우 사소한 불행이 내게는 엄청난 시련이 되기도 했고

한 고비를 넘으면 또 한 고비의 시련이 기다려 숨을 쉴 수 없는 때도 있었으나

어떻게든 살아왔고 지나왔으며 지금은 웃으며 힘든 날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이제는 시련 앞에서 당당한 법도, 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에서 길을 찾는 침착함도 익혔다.

삶은 내게 무수한 시련을 주었던 대신, 빨리 성숙한 어른이 되는 법을 알려주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밝게 웃고 살 수 있도록 더 넓은 마음의 평안을 선물해 주었다.

 

내게는 더없이 나를 사랑해주고 걱정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많다.

내게는 내가 한없이 사랑하고 나를 존재하게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눈을 뜨면 나갈 일터가 있고, 미래의 희망을 위해 배워야 할 것이 또 남아있다.

 

누군가 또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여전히 예스이다.

행복합니까?  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