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꽃시계 풍경

다연바람숲 2017. 5. 17. 17:16

 

저녁 산책길,

저수지 초입에 서있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유쾌합니다.

손목을 잡힌 중년의 여자와 여자의 손목을 잡고 선 중년의 남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서있는 청년, 언뜻 보아도 가족의 모습입니다.

 

그 곁을 지나면서 보니 남자가 여자의 손목에 꽃시계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연신 껄껄 웃으며 매듭을 묶고 있는지 꽃시계를 잡고 열중인 남자와 

남자의 손놀림을 바라보며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리는 여자,

두 사람의 모습을 곁에서 미소지으며 흐뭇하게 지켜보는 청년,

아주 잠시 스친 모습이지만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행복했을겁니다.

다이아가 박힌 화려하고 값비싼 명품 시계는 아니지만

꽃을 꺽어 구멍을 만들고 고리지어 연결을 하고 꽃시계를 만든 그 마음,

그 마음을 받아 손목에 찬 이는 아마도 그 순간, 따스한 행복을 선물받았을 겁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따스하게 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경이 그림처럼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이 젊은 연인들의 흔한 연출이거나, 혹은 불륜 남녀의 장난스런 모습이었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겠지만

장성한 아들을 곁에 둔 중년 부부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더 특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않는 일, 그 작은 꽃시계에 담긴 사랑과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산책하는 시간이 편안했습니다.

꽃시계를 엮어 손목에 채워주는 멋은 없지만

느리고 무거운 아내의 걸음에 맞추어 속도를 늦추어줄 줄 아는 남자와 살았습니다.

급한 성질에 느린 걸음이 답답할 법도한데 한걸음 앞서가는 일도 없이 곁을 지켜주는 남자와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운동이랑 담쌓고 사는 이 여자가 무리될까 더 천천히 걸으라고 자신의 걸음을 늦추는 남자와 살았습니다.

나는 내 남자의 속도에 나를 맞추려고 한 적이 없으면서 늘 곁에 있는 사람의 속도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어리석게도 내가 성질 나쁜 남자를 참고 살았다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남자가 까탈스런 나를 참고 살았습니다.

 

무장무장 꽃길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살아온 많은 날,

그 사람은 가시밭길을 걸어도 나는 꽃길을 걷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꽃시계보다 어쩌면 나는 더 많은 꽃시계를 선물받으며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길을 위해 수고한 사람을 생각하는 걸 보니 이제 비로소 철이 드는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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