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카멜리아, 오, 카멜리아!

다연바람숲 2016. 11. 30. 23:33

 

 

 

 

 

 

 

 

 

 

 

 

 

동백꽃 / 문정희

 

나는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순간에

스스로 목을 꺽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모멸을

함께 꽃피우지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차마 발을 내딛지 못 하겠다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지금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의 언어는 한없이 조악하고 진부하며 천박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동백은 동백이어서 아름답다. 서럽게 아름답다.

 

야멸차고 지독하리만큼 저 분명한 확신,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모가지째 뚝뚝 떨어져 내리는 저 단호한 생을, 아름다움 속에 꽃 피운 절망적인 모멸을 읽어내느라

 

저 무장무장 꽃길을 걸어도 나는 가슴이 저리저리 아프기만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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