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나와 부엌이 남는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 그나마 나은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 어둠은 이렇게 깊고, 그 한없는 재미와 슬픔을, 나는 요즘 들어서야 비로소 내 이 손으로 이 눈으로 만지고 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아왔어, 라고 나는 생각한다.
- 언젠가는 모두가 산산이 흩어져 시간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나는 두 번 다시란 말이 지니는 감상적인 어감과 앞으로의 일들이 한정하는 뉘앙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생각난 <두 번 다시>의 그 엄청난 무게와 암울함은 잊기 어려울 만큼 박력이 있었다.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 게 좋아. 아이든가, 화분이든가,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거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어째서 나는 이토록이나 부엌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상한 일이다. 혼의 기억에 각인된 먼 옛날의 동경처럼 사랑스럽다. 여기에 서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무언가가 다시 돌아온다.
자신이 실은 혼자라는 사실을 가능한 한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행복한 인생이다.
사람이란 상황이나 외부의 힘에 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 때문에 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길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하는 순간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알았다. 말로서 분명하게 알았다. 길은 항상 정해져 있다.
지금이 가장 힘들 때예요. 죽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마 더 이상은 힘들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의 한계는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이제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시시각각 걸음을 서두른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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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슬픔은 정지된 시간이다.
다시 돌아오지않을 사람들에 대한 상실감은 과거의 기억들을 무한 반복 한다.
여기 있었음과 지금 여기 없음과 앞으로 다시는 여기 그 존재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남겨진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슬픔이다.
미카케에게 부엌은 단순히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의 근원이며 인간관계의 교감 공간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기억의 뿌리이며 기다림의 장소일지도 모른다.
상실의 상처를 공유한 미카케와 유이치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과 사츠키와 히라기가 같은 상실의 슬픔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슬픔을 견뎌가는 것이 참 많이 닮았다.
어쩌면 키친, 만월, 달빛그림자 세 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싶었던 것은 결국 슬픔도 절망도 나 스스로가 격렬하게 혹은 차분하게 싸우면서 극복하고 일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삶의 일부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극복과 성장은 개인의 혼의 기록이며 희망과 가능성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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