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알랭드 보통

다연바람숲 2016. 10. 8. 15:15

 

 

결혼의 시작은 청혼이 아니고, 심지어 첫 만남도 아니다. 그보다 휠씬 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이 움틀 때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맨 처음 영혼의 짝을 꿈꿀 때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의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사랑은 우리의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을 우리의 연인이 다른 누구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이들은 우리를 간파해내고, 신뢰하고 나눌 줄 아는 우리의 능력 총량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고 용서해준다. 사랑은 우리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건 친밀함이다. 우리는 유년기에 아주 익숙했던 감정들 그대로를 성년의 관계 안에서 재현하길 바라고, 그 감정은 다만 애정과 보살핌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파트너에게 부당한 요구들을 하고 그 곁에서 매우 부조리해지는 까닭은 우리 내면의 불명료한 부분을 이해하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고통을 많이 해소시켜주는 누군가가 또한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부모의 기적 같은 능력을 보고 감탄했던 어린 아이가 수십 년 뒤 어른이 되어 그때의 경외감에 별난 경의를 표하듯 상대방의 능력을 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양한 단점을 꿰뚫고 있는 현재의 파트너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때 드러날 상당히 심각한 결점, 황홀했던 처음의 감정을 비웃음거리로 만들 만한 결점도 있다는 인간 본성의 중요한 진리를 잊게 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 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은 나의 외로운 내면을 이해하고, 나는 왜 하필 그 농담이 그렇게 재미있는지를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적을 미워하고, 상당히 특화된 성적 시나리오를 함께 시도해보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록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알맞은'사람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성은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보다 정확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시작에만 너무 얽매여 있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이해를 약속하지 않는 이야기, 우리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놓고 사랑의 여정에서 거쳐갈 길이 우울하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고 부름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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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낭만이고 결혼은 현실이다.

시대를 초월해 어떤 러브스토리도 연애의 낭만과 과정을 그려줄 뿐 결혼 이후 남녀의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삶에 대하여 이토록 심층적으로 묘사해준 적이 없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굳이 에리히 프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열정을 벗어난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낭만주의 결혼관의 '알맞은' 사람을 찾는 일이 아닌, 서로 다른 사람의 취향과 차이를 조화롭게 협의해 '알맞은'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결국 수 십년 나의 생활이고 나의 감정이고 나의 현실이다.

나조차도 모르고 지냈던 나의 모습이고 또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결혼 16년이 되어서야 주인공 라비는 그제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커스틴이 까다로운 게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항상 섹스는 사랑과 불편하게 동거하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이제 (평온한 날에는) 행복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가르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러브스토리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고, 영화와 소설에 묘사된 사랑이 그가 삶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랑과는 거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늦게 알게되는 진실도 마주할 때 감동이 될 때가 있다.

너무 늦게, 이제라도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불완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고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완전해질 거라는 메시지에 깊은 공감.

 

공감하고 반성하고 나를 돌아보면서 한뼘 더 성숙해진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이제 나도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 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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