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때찌! 나쁜 손!

다연바람숲 2015. 11. 16. 19:21

  

 

 

 

 

비가 많이 내려요.

마치 장마철의 비처럼, 내린다는 말이 무안하게 비가. . . 쏟아져요.

 

이미 벌써 가지를 비운 나무들 묵묵하고,

아직 내려놓을 것이 남은 나무들도 꾸중듣는 아이처럼 고개만 주억주억,

저리 빗방울이 굵으면 비 맞는 일도 매처럼 아프겠어요.

 

이 비 그치면. . .

가을이 성큼 오겠다.

이 비 그치면. . .

가을이 성큼 깊겠다.

 

그렇게 성큼성큼 다가와 깊던 가을이 이제 이 비 그치면 성큼 떠날거여요.

누군가에게는 젖은 낙엽같다는, 웃지못할 나이를 실감하는 계절이 또 성큼 오고야말거여요.

이 비 그치면. . . 철 모르는 민들레, 철딱서니 개나리, 철부지 상추꽃들, 미울만큼 빠알간 넝쿨장미. . . 아이쿠야 할 거여요.

여기가 어딘가, 지금이 어떤 계절인가, 내가 무슨 철모르는 짓을 한건가, 꽃 핀 걸 후회하게 될거여요.

그럼에도 이미 두터운 겨울의 외투를 걸치고 바라보는 철딱서니 꽃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요.

 

다연 앞에도 아직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있는데 바로 페라고늄여요.

피고지고 피고지고 사계절 꽃을 보여주는 페라고늄이 피고지고 다시 빠알간 꽃망울을 맺는 중이었어요.

간 밤 샵의 문을 닫으면서도 그 파릇파릇 소담한 잎새들에게 밤새 안녕을 했더랬는데,

혹여 이제 바깥이 춥지않을까 잠시 걱정도 했더랬는데, 오늘 아침 샵문을 열면서 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누군가 무참하게 잔인하게 무지막지하게 열 개도 넘는 가지들을 후루룩 꺽어가 버렸어요.

어떤 가지는 꺽인채로 대롱대롱 매달려있고, 꽃송이는 사라지고 꽃잎들만 뚝뚝 떨어져 있어요.

귀한 것도 아니고 어느 꽃집에나 가도 흔하디 흔한 것인데 그걸 꺽꽂이하려고 그토록 무자비하게 꺽어갈리는 없는 일이고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 .  

혹여 샵의 주인인 내게 누군가 나쁜 감정을 갖고 엉뚱하게 꽃에게 화풀이를 한건 아닐까. 솔직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더랬지요.

 

마침 샵의 입구 바로 옆에 있던 화분이어서 보안업체를 통해 설치해놓은 CC TV를 통해 그 순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다연의 주인인 내게 감정이 있는 사람은 아니란 거 확인, 그저 단순히 꽃나무에 대한 욕심의 행동이란 거 확인. . .

그 사실의 확인은 위안이 되었지만 처음 보는 누군가의 모습과 행위를 바라보는 것이 슬프고 마음은 아팠어요.

페라고늄은 꺽어 다시 심으면 다시 자라 꺽꽂이를 하는 식물이래요. 아마 그 이유로 꺽어가지않았을까 짐작은 하는데. . .

그토록 남의 것을 탐낼만큼 꽃을 좋아라하는 사람이 아무리 말못하는 식물이라도 그리 모질게 꺽으면 아플거란 건 왜 몰랐을까요.

나쁜 사람, 나쁜 손 때찌!

 

그래서 비도 오는데 마음이 우울할 뻔 했어요.

하지만 덕분에 가지치기 시원하고 어여쁘게 했다고 치고. . 덜 밉게 손질을 해주었어요.

상처야 있겠지만 저 상처로부터 새로운 가지를 뻗고 또 새 잎을 내고 또 꽃을 피울거여요.

그 상처로부터 다시 뻗어가는 가지들은 더 굵고 단단해지겠지요.

 

가져간 것도 잃은 것도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아주 작은 것인데, 사소한 것인데. . .

누군가 사람이 미운게 아니라 , 그 모진 손이, 그 마음이 미운거라면 제가 속좁은 사람일라나요?

 

그래서 네 마음부터 다스리고 채근하고 어른되라고 가을비가 저리 주룩주룩 내리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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