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노년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살아온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다연바람숲 2015. 1. 6. 14:44

 

노년의 얼굴은 외형적인 조건에 자신을 속박시키지 않는다.

그 얼굴은 그가 살아온 세월, 시간이 만져 준 육체의 이면을 정확히 보여 준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청춘의 아름다움보다 냉혹한 것이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살아온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김선우 <사물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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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다연을 찾아와 새해 덕담을 내려주시는 어르신께서 오늘 다연을 다녀가셨습니다.

 

몇 해 뒤면 팔순을 바라보시는데 긴 모직코트에 중절모를 쓰시고 자전거를 타고 오셨습니다. 날이 좋아 모처럼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나오셨다는 그 모습도 멋지셨지만 정작 제 눈길을 사로잡은 건, 자전거 뒤에 가지런히 얹혀 묶여있는 책 몇 권이었습니다.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읽을 책 몇 권을 사오시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철학서 한 권, 수필 한 권, 소설 한 권...그 중엔 이즈음의 베스트셀러도 눈에 보입니다.

 

다연을 찾아주실 때마다 언제나 제가 읽고 있는 책들을 관심있게 살펴주시는 어르신입니다. 더러 공통적으로 읽은 책에 대하여 대화도 나눠주시고 그와 연관있는 또 다른 책들을 권해주기도 하시고 올바른 삶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편안하고도 쉽게 들려주시는 분입니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아내를 극진히 살피는 지아비이고 독립한 자녀들에게 정신적 지주같은 존경받는 아버지이며 오랜 공직생활을 훌륭하게 마치시고 노년의 삶을 누구보다 품위있게 지켜가는 분이어서 그 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어르신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잊지않습니다.

 

많은 걸 가지셨지만 언제나 겸손하고 검소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시면서도 드러냄없이 고요하고 겸허한 분입니다. 막내딸과 동갑내기인 제게 늘 존댓말로 존중해주시고 어른이라 가르치시려하기보다 어떤 말이거나 제 말을 귀 기울여 더 많이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어르신의 얼굴을 보면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분의 영혼이 진실로 무엇을 성취하며 살았는지, 어떤 인품을 지닌 분이신지, 그 분의 살아온 세월과 삶이 보입니다.

 

비록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 오셔도...얼굴에 주름은 가득하고 머리칼은 희끗해도...참 아름다운 노년입니다.

 

하지만 세상엔 어르신처럼 삶을 반추하는 아름다운 노년이 있는가하면 추한 모습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철없는 노년의 어른도 있습니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자기 성찰은 없이 다만 외면적으로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만 삶의 모든 의미와 비중을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장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처절한 삶의 고비를 보내고 있건말건 몇 해 동안 자신이 탔던 차가 어떤 것들이었는지 몇씨시였는지 오로지 자랑이 우선이고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와 상관없이 무조건 실패한 인생의 사람이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멸시하고 짖밟아도 된다는 어리석은 삶의 원칙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인격은 지식이나 인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결정되는 것이어서 남들에게 보여 줄 외제차에 집착하고 메이커 옷이나 치장한 명품따위를 내세우고 나이보다 젊어보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시술을 하고 주름이 생길까 잡티라도 돋을까 회갑도 훨씬 지난 얼굴 가득 썬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다니면서 정작 그렇게 가꾼 얼굴,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무지하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이 전부인 남자도 있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자리에 있는 상대라면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무조건 반말이 일쑤이고 막말을 일삼고 남의 약점을 가십으로 달고 다니며 익힌 지식이 아니라 주워들은 얄팍한 상식들을 자신의 지식인양 떠벌이면서 남의 말은 귀 기울이거나 말할 틈도 주지않고 오로지 자신의 말만 하고 자신의 말만 옳다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나이값은 못하면서 나이를 훈장처럼 달고다니는 그런 노년에겐 아름다움이 아니라 동정과 연민이 느껴집니다.

 

가꾸고 공들이는 만큼 외모는 젊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겁니다. 그것이 외제차거나 명품이거나 보여지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의 인품이고 인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외모를 젊고 아름답게 가꾸어도 그 삶이 진지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생명이 없는 빈 껍데기일 뿐 입니다. 결국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 아름다운 정신이 육체에, 육체가 정신에, 자연스럽게 스며있을 때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늙어가는 육체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게 되는 일일겁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정말 추한 것은 얼굴에 늘어나는 주름이나 검버섯이 아니라 영혼에 깃든 주름과 검버섯일겁니다. 육체나 외모가 늙어도 늙은 육체와 주름살 진 얼굴조차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아온 삶의 이력들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노년의 얼굴들이 있습니다. 추하게 살면서 추하게 사는 줄 모르고... 잘 늙어 간다는 것의 의미조차 알지못하는 사람에겐 모두 헛된 말이되겠지만 그런 사람들때문에 어쩌면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노년이 더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사물들> 에서 작가 김선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음은 찬란한 매혹이지만 젊다는 것만으로 아름다움이 획득되는 경우를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한 인간을 뿌리부터 송두리째 공명시키는 아름다움은 거의 언제나 잘 늙어 가는 육체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답기를 원한다. 아름답게 늙어 가는 이들을 바라볼 때 행복하다. 다양한 늙음의 양식을 바라보며 잘 늙어 가기 위한 지혜를 구하곤 한다. 때로 마음속으로 점수를 매겨 보기도 한다. 아, 참 아름답구나. 혹은, 절대로 저렇게 늙어서는 안 되겠다, 등등. 운 좋게도 내게 평균 수명만큼 사는 것이 허락된다면, 내가 그랬듯이 나를 아는 젊은이들이 아, 참 아름답게 늙었군요, 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언젠가 누군가가 제게 미래의 소망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우아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 소망엔 변함이 없습니다.

 

흰 머리가 늘어나고 눈가에 주름살이 잡히기 시작하지만 그것이 두렵거나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갸름하던 얼굴이 둥글어지고 이제 천상 중년 아줌마의 두루뭉실한 몸매를 가졌지만 그것이 창피하거나 속상하지 않습니다. 이제 다만, 나이 들어갈수록 제 얼굴이 지나온 삶을 아름답게 비추어주길 바랍니다. 더 나이가 들어 제 삶을 반추하는 저의 얼굴을 보며 저를 아는 누군가가 참 아름답게 늙었군요 라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