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단상 - 바람엽서

이별할 땐 더 사랑한 사람이 덜 아프다

다연바람숲 2014. 12. 1. 15:25

 

이별 앞에 서면 알게 된다. 더 사랑했던 쪽이 덜 아프다는 것을.

마음껏 아파하면서 후회 없이 사랑한 사람은 이별 앞에서 오히려 담담하다. 다시 만나 똑같이 시작해도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게 더 좋은 옷을 입혀주고, 더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주고 더 좋은 곳을 함께 여행했더라면 이별도 오지 않았을텐데 하는 미련도 없다.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고 비 오는 날에도 만났더라면, 부끄럽다고 빼지 않고 거리 한복판에서도 안아주었더라면, 아깝다고 주저 않고 더 좋은걸 사주었더라면, 하는 후회도 없다.

 

연애라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감정을 아꼈던 승자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은 승자와 약자로 나뉘는 게임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떠나는 사람과 후회하며 남겨진 사람으로 나뉘는 게임이라는 것을.

 

조진국 <고마워요. 소울 메이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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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와 7년을 연애하고 헤어진 여자를 만났다.

후회한다고 했다. 7년 이라는 세월이 아깝고 억울하다고 했다.

무지하고 무능하고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양심도 가책도 모르는 바람둥이였다고 했다.

혼자 살다 보니 의지할 남자가 필요했고, 한 번의 실패때문에 두 번의 실패는 피하고싶었다고 했다.

참았고 이해했고 진심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진심이 받아들여질 거라 믿고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달라지지않았고, 진심이라는 건 그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 할 때만 이용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결국 몸도 마음도 지치고 황폐해지고, 통장의 잔고마저 바닥을 드러내고서야 이별을 결심했다고 했다.

다른 여자를 만나러가기 위해서, 붙잡는 그녀를 뿌리치고 따돌리고 도망치던 뒷모습이 ,

다른 여자와 함께 있으면서 그녀에게 모욕을 주던 얼굴이 그녀에게 남은 그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했다.

이용 당하는 줄 알았지만 사랑했고, 사랑이 사람을, 또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고 했다.

진심을 받아들일 마음조차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는 데,

꼬박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눈 멀고 귀 멀고 오로지 그 사람만 보이는 것,

그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 남자와의 만남을 만류했지만 그녀는 귀머거리였고 눈 먼 장님이었고,

그녀가 그녀를 바쳐 헌신하고 복종하고 스스로 황폐해지는 동안 우리 모두는 철저하게 방관자일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바닥까지 뛰어드는 것,

그것이 함정이고 늪이고 수렁인 줄 알아도 그 감정의 깊이에 완전히 빠져버리는 것.

그녀는 잘못이 없다. 사랑했고, 사랑한만큼 온전히 주었고 계산하지않고 순수했을 뿐이다.

사람을 믿고 사랑한 것이, 사랑의 힘과 변화를 믿고싶어한 것이 죄가 뒬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실패한 연애의 패자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동정하거나 어리석다고 심판할 자격은 없다.

 

후회하지 말라고 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하여 아깝고 억울해하지 말라고 했다.

다시 만나 똑같이 시작해도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 없을만큼 사랑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더 많이 해주지 못해서 후회하고 미안해지지않을만큼 사랑했으면 된 것이다.

결국 혼자 주는 일방적인 사랑에 지쳐 포기했을지라도 준만큼 받기를 바란 적 없고 주는 사랑마저 기꺼웠다면,

그리하여 사랑을 바라고 믿고 꿈꾸며 견디는 동안 그사람으로 인하여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일생 동안, 모든 것을 다바쳐 사랑하고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것인가.

다만 상대를 잘못 선택했을 뿐이다. 사랑이 아님을 알면서도 너무 멀리 왔을 뿐이다.

함께 해 온 기억이 너무 아까워서, 조금만..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온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사랑이 끝났다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더 늦기 전에 멈추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후회는 그녀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후회는 상실한 자의 몫이다.

처음부터 바람둥이 따위를 7년씩이나 참고 견뎌주는 여자는 이 시대에 없다.

그러므로 마음껏 아파하면서 후회 없이 사랑한 사람은 이별 앞에서 담담해야 한다.

후회는, 사랑을 받았으나 그 사랑을 받아들일 줄 몰랐던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그 사랑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이별은 그녀를 사랑 밖으로 밀어냈지만 어리석은 사랑과 가식적인 사랑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밝은 눈을 줄 것이다.

이별은 그 남자를 사랑 밖으로 밀어냈지만 진정한 사랑과 가식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경험을 언젠가 그에게도 남겨줄 것이다.

 

게임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