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폭설 / 박이화

다연바람숲 2013. 12. 27. 11:20

 

폭설 / 박이화

 

 

밤새 보태고 또 보내어 쓰고도

아직 못다한 말들은

폭설처럼 그칠 줄 모릅니다

우리, 그리움에 첩첩이 막혀

더 갈데 없는 곳까지 가볼까요?

슬픔에 푹푹 빠져 헤매다

함께 눈사태로 묻혀 버릴까요?

나 참 바보 같은 여자지요?

눈오는 먼 나라 그 닿을 수 없는 주소로

이 글을 쓰는 난 정말 바보지요?

그래도 오늘 소인까진

어디서나 언제라도 유효하면 안 될까요?

끝없이 지루한 발자욱처럼 눈발,

어지럽게 쏟아지는 한길가

빨갛게 발 시린 우체통이

아직 그 자리를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군요

한편에서 쿨룩이며 숨가쁘게 달려온 제설차가

눈길을 쓸고 거두어 위급히 병원 쪽으로 사라집니다

아, 그렇군요

내 그리움도 이렇게 마냥

응달에 쌓아 두어선 안 되는 거군요

아직 남은 추위 속에

위험한 빙판이 될 수 있겠군요

슬픔에 몸둘 바 몰라

저 어둔 허공 속 지치도록 떠도는 눈발처럼

나, 당신 기억 속에 쌓이지 말았어야 했군요

그러나,

그러나 그 사랑이 전부이고 다인 나에게는

해마다 어디로든 추운 겨울은 오고

큰 눈 도무지 그치지를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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