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가을 풍경에 들다

다연바람숲 2013. 11. 7. 12:32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 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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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적막하다는 것,

풍경에 들어보면 알지요.

 

비울게 많아 분주한 걸음조차 소리가 없다는 것,

은근하고 고요해서 익어가는 빛깔마저도 적막하다는 것,

어느새 성큼 가야할 때를 고하는 계절 속에 들어있다보면 알게되지요.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않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나의 가을도 그렇게 깊어갑니다.

 

상당산성의 호숫가,

그 적막한 가을도 그렇게 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