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드 보통

다연바람숲 2013. 10. 31. 11:53

 

 

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돈한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그러나 내가 이렇게 우리의 사랑 이야기의 발단을 운명론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적어도 한가지 사실은 증명해준다. - 내가 클로이를 사랑했다는 것, 우리가 만나고 못만나는 것은 결국 우연일 뿐이라고, 989.727분의 1의 확률일뿐이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 동시에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절대적 필연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 즉 그녀에 대한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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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희망이 자기 인식에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 - 비겁함, 심약함, 게으름, 부정직, 타협성, 끔찍한 어리석음 같은 것 - 을 상대에게서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선택한 사람 주위에 사랑의 방역선을 쳐놓고 ,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 가진 결함으로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사랑스럽다고 결정해버릔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 [ 자기 인식에서 나온 모든 증거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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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이냐 단순한 망상이냐? 시간 [이 또한 그 나름으로 거짓말을 하지만]이 아니라면 누가 그 답을 말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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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로맨스는 우리가 오래 기차 여행을 하다가,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름다운 사람을 몰래 눈여겨보며 상상하는 것처럼 순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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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의 얼굴은 그 모호함 때문에 오리와 토끼가 둘 다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오리- 토끼 그림과 비슷했다. 이 그림에서는 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상상력이 오리를 찾으면 그는 오리를 보게될 것이다. 상상력이 토끼를 찾으면 토끼가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의 경향이다. 물론 나를 지배하는 주된 경향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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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록 잠시라고 해도 우리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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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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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 수축하는 아코디언 같았다. 내 사랑 이야기는 얼음 덩어리와 같아서 , 현재로 들고 오는 동안 차차 녹아버렸다. 그것은 마치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현대의 사건, 역사가 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심적 세목으로 축소되어버린 사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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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더 복잡한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의 모순들에 부응할 수 있는 교훈, 지혜에 대한 요구를 지혜가 무력해지는 상황과 조화시킬 수 있고, 첫눈에 반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그 불가피성과 조화시킬 수 있는 교훈, 사랑을 평가할 때에는 교조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로 달아나지 말아야 하고, 두려움의 철학이나 실망의 윤리학을 구축하지 말아야 했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 결론에 번호를 붙여서 단정하게 배치해 놓는다고 해도] 분석에는 절대로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 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그 교훈이 더욱더 타당해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레이철이 다음주에 저녁 식사를 하자는 내 초대를 받아들였고, 그 후로 그녀를 생각만 해도 시인들이 마음이라고 부르는 영역이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떨림은 한가지를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 한 번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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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독한 기억상실증을 동반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