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 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나, 불에 태울 때면 모두 똑같은 종잇조각일 뿐이지. 불이 ' 오, 이건 칸트로군.' 이라든가, ' 이건 요미우리신문의 석간이군.' 이라든가 , 또는 ' 야, 이 여자 젖통 하나 멋있네.' 라든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고 있는 건 아니잖아. 불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것이든 모두 종잇조각에 불과해. 그것과 마찬가지야. 중요한 기억도, 그다지 중요하지않은 기억도, 전혀 쓸모없는 기억도, 구별할 수도 차별할 수도 없는 그저 연료일 뿐이지."
" 만약 그런 연료가 내게 없었다면, 그래서 기억의 서랍같은 것이 내 안에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득한 옛날에 뚝 하고 두 동강이 나버렸을 거야. 어딘가 낯선 곳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길바닥에 쓰러져 개죽음을 면치 못했겠지. 중요한 것이든 아무 쓸모 없는 것이든, 여러 가지 기억을 때에 따라 꺼내 쓸 수 있으니까, 이런 악몽같은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야. 더 이상은 안돼, 더 이상은 못해, 하고 생각하다가도 어떻게든 그 난관을 넘어설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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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 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것이 현실이든 꿈이든 확실한 것은 아침은 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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