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다연바람숲 2013. 5. 3. 19:19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 리- 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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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은 분들은 <롤리타>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으므로 무의미하다고 단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교훈적인 소설은 쓰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다. 존 레이가 뭐라고 말하든 간에 <롤리타>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다시 말해서 예술 (호기심, 감수성,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그런 책은 흔치 않다. 나머지는 모두 시시한 졸작이거나 이른바 관념소설인데, 마치 거대한 석고 덩어리처럼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조심스럽게 전해지는 관념소설도 사실은 시시한 졸작일 때가 아주 많다. 언젠가는 누군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서 발자크와 고리키와 토마스 만을 힘차게 때려부수리라.

 

감히 단언하건데 진지한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이 발표한 책으로부터 끊임없이 위안을 받는다. 책은 마치 지하실 어딘가에 항상 켜두는 점화용 불씨와 같아서 작가의 가슴속에 있는 온도 조절기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즉시 작고 조옹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친숙한 열기를 발산한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언제든지 마음 속에 불러낼 수 있는 책의 존재감,책의 빛은 작가에게 한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작가가 예견했던 모양과 빛깔에 가깝게 완성된 책일수록 더욱더 풍요롭고 은은하게 빛난다.

 

                                                                                                              <작가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