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심연은 사람의 그 한가운데 존재한다

다연바람숲 2013. 1. 9. 20:37

 

 

 

 

 

습관처럼 다닌다.

습관처럼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여행을 다니는 습관만큼 내가 사람을 믿는 건 사람에게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으로 부터 받을 게 있다는 확신에 기대는 바람에 나는 자주 사람에 의해 당하고 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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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여행은 끝이다. 그만큼 자유롭지도 못할 뿐더러 기회도 적기 마련, 세상에 하나 뿐이라고 생각한 친구를 믿은 적이 있으나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닌 듯 하였다.

그 울림은 더 장황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옮겨가면 그뿐이었다. 내가 사람에게 함부로 대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기에 당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라고 자위하면 되는 것,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중국의 왕희지가 서예를 연마하기 위해 연못물이 까매지도록 먹을 갈았는데 이를 두고 묵지(墨池)라 했다는 일화처럼 나는 사람을 믿기 위해 끊임없이 다닐 것이고 그렇게 다님으로써 사람의 큰 숲에 당도하기를 희망한다.

역사가 길지 않은 믿음은 가볍다. 그 관계엔 부딪침만 있고 따분함만 있을 뿐이며 혼자인 채로 열등할 뿐이며 가벼울 뿐더러 균형마저 잃는다. 심연은 깊은 못이나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그 한가운데 존재한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끝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끝이고 더 이상 아름다워질 것도 이 땅 위에는 없다.

 

 

이병률 산문집 <끌림 > - #061 페루에서 쓰는 일기 중에서

 


*

 

 

열린 문을 닫으면 그대로 벽이 된다.

그 벽을 등지고 이제 또 다른 세상을 바라 볼 시간,

 

사람을 믿지않으면 더 이상 아름다워질 것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라는 큰 숲에 당도하기 위하여

사람의 그 한가운데 존재하는 심연에 닿기 위하여

더 넓은 세상으로의 또 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