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서천 마량포구에서의 봄날

다연바람숲 2013. 2. 27. 12:49

 

무작정 바다를 향해 떠난 날이 있었습니다.

사는 곳에서 한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바다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든 바다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하듯 떠나본 길이었습니다.

2월이지만 바람마저 고요해 겉에 두텁게 걸친 외투가 무겁게 느껴지던 봄날,

닿아야할 곳을 정하지못해 조금 에둘러 갔지만, 그래서 예측했던 시간보다 조금 더 늦게 도착했지만

동해 남해 서해 중앙에 위치한 내륙에 살아서 그저 꿈처럼 멀기만했던 바다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정오의 햇살 아래 고즈녁한 마량포구와 비인등대길,

파란 하늘과 경계를 짓지않는 바다,

해가 뜨고 또 해가 지는 걸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마량,

일출도 일몰도 보지못하는 시간이지만 그저 거기 바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이런 고요와 침묵이 주는 마음을 얻으려 바다에 오고싶었다는 걸,

눈이 시린 하늘빛이 녹아든 바다를 마주하면서 발견하고 위안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도 한때 바람이 불고, 해일이 일고, 모든 것을 집어 삼킬듯한 태풍이 지나간 날이 있을 터이지요.

그 모든 기억의 시간을 지우고 오늘 저리도 고요한 바다,

사람의 마음이라면 해탈이고 초월이고 인내한 시간의 평온일터이지요.

 

바다,

그 마음을 닮아가는 시간입니다.

바다,

그 모습을 닮아가는 봄날입니다.

 

저 가득찬 여백이면서 텅 빈 충만같은 풍경의 말을 받아적을 수만 있다면,

내 짧고 서툰 언어가 아쉬웠지만 여운이 주는 행복이란 또 이런 것이겠지요.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새겨둔 순간은 언제든 꺼내어 다시 나의 언어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