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 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창너머 풍경 > 열정 - 끌리는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잎들 / 송재학 (0) | 2012.10.23 |
---|---|
깊이 기피 / 강연호 (0) | 2012.10.06 |
슬픔이 해준 것들 / 김경미 (0) | 2012.09.22 |
우리가 헤어질 때 / 신용목 (0) | 2012.09.16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고영민 (0) | 2012.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