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기피 / 강연호
갈 봄 없이 계절 바뀐다
봄이 언제였더라, 요즘엔 계절만 바뀐다
짐작건대 올 가을도 깊지 않으리
무슨 예언처럼 땀이 맺힌다
이래도 되나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세상이 된 지 이미 오래라지만
계절조차 깊이 없이 텀벙텀벙 건너간다는 것
그저 무작정 춥거나 뜨거우리라는 것
일기예보는 점점 단순 명쾌해지고
정말 이래도 되나?
거리는 한순간의 수줍음도 망설임도 없이
다들 훌훌 벗어던지고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갈 봄 없이 계절만 바뀐다
내내 염천이거나 영원히 빙설이거나
저질러놓고 보자는 듯
깊이를 기피하는 건 날씨만이 아닐것이다
봄날 간다, 는 말
가을이 깊다, 는 말
말들의 화석만
중세의 깊이까지 깊어질지 모른다
지난봄엔 대체 뭘 했더라
두어 군데 부의 봉투를 여몄던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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