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깊이 기피 / 강연호

다연바람숲 2012. 10. 6. 20:17

 

 

 

깊이 기피 / 강연호

 

 

갈 봄 없이 계절 바뀐다

봄이 언제였더라, 요즘엔 계절만 바뀐다

짐작건대 올 가을도 깊지 않으리

무슨 예언처럼 땀이 맺힌다

이래도 되나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세상이 된 지 이미 오래라지만

계절조차 깊이 없이 텀벙텀벙 건너간다는 것

그저 무작정 춥거나 뜨거우리라는 것

일기예보는 점점 단순 명쾌해지고

정말 이래도 되나?

거리는 한순간의 수줍음도 망설임도 없이

다들 훌훌 벗어던지고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갈 봄 없이 계절만 바뀐다

내내 염천이거나 영원히 빙설이거나

저질러놓고 보자는 듯

깊이를 기피하는 건 날씨만이 아닐것이다

봄날 간다, 는 말

가을이 깊다, 는 말

말들의 화석만

중세의 깊이까지 깊어질지 모른다

지난봄엔 대체 뭘 했더라

두어 군데 부의 봉투를 여몄던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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