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우리가 헤어질 때 / 신용목

다연바람숲 2012. 9. 16. 19:39

 

 

 

 

 

우리가 헤어질 때 / 신용목

 

  

 

  가을은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별의 방향을 모른 채 걸었다, 나무들의 돌팔매질— 날아가는 붉은 심장들

 

  어떤 인사는 꿈같아라 꾸지 않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하여 누운 적 없는 바닥을 쓸어보는 일

  잠든 적 없는 시간을 짚어보는 일

 

  그리고 손바닥을 펼치고 물끄러미

 

  지나간 모든 이야기는 운명이 된다, 다가온 모든 이야기가 우연이었듯— 그리하여

  다가올 모든 이야기의 방향으로

 

  우리가 우연의 길목마다 그려놓은 운명의 지도를 찢으며 서로를 스쳐갈 때

 

  가을이 왔습니다, 다가오는 이야기

  가을이 왔습니다, 지나가는 이야기

 

  꾸지 않은 꿈이 잠 밖으로 손을 내밀어 쓰다듬는 인사처럼, 몸 밖으로 꺼내놓은 심장이여

 

  우리는 문득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바람이 유리 상자에 햇볕을 담고 날아가다

  슬픔에 부딪쳐 쨍, 깨져버린 높이에서

 

  아픔 없는 증상으로 반짝이는 구름을

  그리고 손을 흔들며 물끄러미— 우리는 서로의 방향을 모른 채 걸었다, 나무들이 터질 듯한 심장을 이별을 향해 던지기 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