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소슬한 바람부는 가을 날의 다연

다연바람숲 2012. 9. 19. 17:08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오래된 가구일수록 옹골지고 단단한 법이지요.

오랜 세월의 풍상을 지나오고도 그 모습 망가지지않을 정도면 두 말 할 필요가 없는거지요.

가히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다고도 말 할 수 있는거지요.

나를 둘러싸고 나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다연의 것들이 대개가 그런 녀석들이지요.

 

그렇게 옹골지고 단단한 녀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보니 사람도 단단하게 여물어가는건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단지 그 시간만큼 나이가 먹어서 철이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다가오는 계절이, 이 가을이라는 것이 이렇게 만만하게 받아들여지는 걸 보면 조금은 저도 야물어졌다는 것이겠지요.

 

태풍 산바마저 지난 간 시절이 어수선하긴 해도

저녁무렵이면 서늘해져서 덧입을 옷을 찾아들긴 해도

바람 한자락에도 마음 짜안해져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지긴 해도

초록 투성이의 잎들이 하나 둘 새치처럼 색을 바꾸는 걸 바라보며 쓸쓸해지긴 해도

이젠 이런 계절이다, 시절이다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으니 견딜만할 것이지요.

 

어떤 이의 연애가

어떤 이의 이별이

가을 날의 동화처럼 들려왔다 사라지는 것처럼

이 계절도 눈 깜짝할 시간에 왔다 가고 말겠지요.

 

그런 가을 날이어요.

창 밖으로 무심한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잎들이 안으로 지난 여름을 익히는,

 

그런 가을 날이어요.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들이 무수한 소문을 뿌리고 가도

그 소문마저 잠들어 한없이 고요하고 고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