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청주 다연, 이 가을의 무늬

다연바람숲 2012. 9. 12. 18:45

 

 

  이 가을의 무늬 / 허수경

  

 

  아마도 그 병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

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여름을 촘촘히 짜내렸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

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들이 풀어져서 저 술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

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네

 

 오무려진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

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

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

 

하루 종일 서늘한 바람이 불었더랬지요.

하늘은 회색빛,

바람은 아직 가을의 물이 들지않은 나뭇잎들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며 지나갔지요.

비가 오려나 비가 오시나

허공으로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가늠해보기도 몇 번,

비는 여직 내리지않고 비 냄새 묻어나는 바람만 이 저녁을 지나갑니다.

 

요며칠 다연이 참 어수선했지요.

하나하나 빠져나간 물건들의 빈자리를 채울 물건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하루는 늦은 밤까지, 또 하루는 이른 아침을 분주해야했지요.

이제 새식구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 다연이 가을의 알곡처럼 꽉 채워졌어요.

그런데도 사진으로 담고보면 아무 것도 달라진듯이 안보이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새 집이 낯설만한 녀석들도 하루만 지나면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익숙해지고

본디 있던 것들과 잘 어우러질까? 걱정했던 녀석들도 터줏대감같은 것들과 또 금세 스며들고

저 많이 바빴어요. 일도 했어요. 공치사라도 하고싶은데 그 공치사가 무색할만큼 평안한 모습이어요.

 

슬쩍슬쩍 얼굴들만 비춰봤어요.

하나하나 포스팅해 올리려면 또 시간이 걸리겠지요?

다연에 어떤 새식구가 늘었나 한 번 바라봐 주세요.

 

이 어여쁜 것들을 위해 저도 가을꽃이라도 한다발, 선물처럼 들여놓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