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다연바람숲 2012. 9. 25. 00:23

나의 서역 / 김경미

                          -비망록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실물은 전부 헛된 것
만나지 않는 동안만 우리는 비단 감촉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죽도록
만날수록 동백꽃처럼 쉽게 져버리는 길들
실물은 없다 아무 곳에도
가끔 편지나 보내어라

선천적으로 수줍고 서늘한 가을인 듯

오직 그것만이 생의 한결같은 그리움이고
서역이라니

 

*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실물은 전부 헛된 것

 

실물은 없다 아무 곳에도

가끔 편지나 보내어라

 

편지라도 보낼 수 있는 삶이라면 그래도 아름답지요.

뚝뚝 동백꽃처럼 쉽게 져버리는 길들이란

쉽게 잊혀지고 지워지고 절대 되돌아보지 않는 법,

 

선천적으로 수줍고 서늘한 가을인 듯

생의 그리움으로 서역을 짓는 이, 그래서 또 아름답지요.

 

나의 서역, 다연이 또 하루 어지럽고 분주했어요.

오래 터줏대감처럼 자리했던 창가의 고재선반 한쌍이 빠져나가고

선반에 놓여졌던 올망졸망 옹기들에게 조금은 어설프지만 새 자리를  마련해주었지요.

느릅나무 큰약장이 빠져나간 자리에도 조금 비좁게 새식구 둘을 나란히 자리잡아 주었어요.

오동나무에 먹감나무 문판을 지닌 작은 애기이층농과 책가도가 멋진 중국 민화장이 새로 들어왔어요.

 

먼 곳에서 찾아주신다 약속을 전해오신 손님들이 계셔서 정리를 어찌나 서둘렀는지

손님을 맞이하고 안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은 어지러울 정도였지요.

그 분들과 맞물려 또 먼길을 찾아와주신 분들이 함께하면서 다연이 한동안 또 왁자했지요.

사람과 사람의 소리, 사람의 온기를 좋아하는 다연의 아이들이 한동안 많이 행복했을거여요.